자연은 감성을 싣고

by 수수


“선생님, 여기 토마토가 열렸어요.”
“신기해요.”
“엄청 작아요.”

학급에 배정된 목재 화분이 있었다. 가로 120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작은 화분이었다. 그 안에 토마토 모종을 심었다.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모종 하나씩 심었다. 내가 심은 것 포함하여 모두 10 모종이었다. 봄에 심었던 모종이 어느새 커다란 줄기를 이루었다. 열매가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모종을 심던 날, 아이들은 큰 작업이라도 할 것처럼 들뜬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작은 손가락들이 모종 주변 흙을 오밀조밀 만져 눌렀다.

“얘들아, 모종이 흙속에서 뿌리를 내리려면 주변 흙을 단단히 눌러 주어야 한 대.”

이 말을 듣자마자 아이들은 더 단단하게 눌러 주었다.

“씩씩 아, 잘 자라야 해!”

“귀욤아, 아프면 안 돼”

팀마다 모종에 지은 이름을 불러 주며 토닥여 주는 아이들이었다.

모종이 흙속에 단단히 자리를 잡도록 주변을 꼭꼭 눌러 아이들은 토마토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매일 물을 주었다. 학급 아이들 모두가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매일 찾아가는 아이들 몇이 있었다. 자기 팀이 심은 모종을 전혀 찾아가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찾아갈 시간은 점심시간이 전부였는데, 그 시간에 다른 놀이를 하기에 바쁜 아이들이었다.

뜰 중앙 담벼락에 있는 수돗물을 받아 살금살금 걷는 모습, 페트병을 잘라 만든 작은 물통에 물을 가득 담았다. 토마토를 보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며 쑥쑥 자라라고 연신 물을 날랐다.

나는 출근을 할 때 교실에 들르기 전에 토마토가 있는 뜰에 먼저 갔다. 혹여라도 아이들이 심은 모종이 잘 자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9팀의 모종 중에서 쓰러질 것 같이 약하게 자라는 것이 있었다. 아이들이 물을 준다고는 하지만 흠뻑 주지는 못하기에 내가 직접 물을 주곤 했다.

“선생님, 얼른 와 보세요.”

아이들 몇 명이 쉬는 시간에 내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행복하고 놀란 표정이어서 다행이었다.

“무슨 일인데?” 나도 덩달아 신나는 마음이 되었다.

아이들이 내 팔을 끌고 달려간 곳은 토마토가 심겨진 화분이었다.

“선생님, 꽃이 피었어요. 귀욤이 팀에도 있고, 으뜸이 팀에도 있어요.”

감탄하는 소리가 흥겹게 들렸다. 다른 팀 토마토 나무에 핀 꽃을 보고 기뻐하는 아이들 모습이 천국 아이들 같았다.

몇몇 아이들이 학급 전체 아이들에게 전한 기쁜 소식이 교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얘들아, 꽃 피었어.”

“정말?”

모두 달려 나와 작은 화분 둘레를 에워싸고 서서 웃고 떠들었다.

새 생명이 주는 감격, 그 감동을 감추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선생님, 그 가지는 왜 꺾어 버려요?”

나는 토마토 곁순을 떼어 주고 가지치기를 해주었다. 시골에서 성장하면서 얻은 지혜다.

“이 순을 쳐 주어야 영양분이 온전히 토마토에 가는 거란다.” 내가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말이 생각나, 아이들이 키우는 토마토 순을 자신 있게 떼어 주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아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물어 온 말이었다.

“나도 해볼래요.” 내 곁에서 바로 시도해 보는 아이, 나와 그 아이는 함께 토마토 줄기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순을 제거했다.

“선생님, 재미있어요. 다른 아이들 것도 해주고 싶어요.”

“선생님, 그 막대는 왜 꽂아요?”

“왜 꽂을까? 생각해 볼래?”

“아, 쓰러지지 않게 해 주려고요.”

“맞아, 토마토 줄기가 키가 커지니까 휘청거리잖아, 금방 쓰러질 것처럼. 토마토가 이제 주렁주렁 열릴 거거든, 그러면 더 힘들겠지.”

“나도 할래요.” 몇몇 아이가 자기도 해보겠다고 손을 내민다. 서툴러도 괜찮다. 아이들은 토마토 줄기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를 세워 주었다.

“선생님, 빨리 와보세요” 아이들이 또 다급해졌다. 아침에 등교하면서 본 토마토 이야기다.

나는 벌써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놀라는 척하며 아이들이 끄는 대로 따라 나갔다.

“이거 봐요. 토마토가 익었어요. 빨가요. 선생님 것만 익었어요.”

모종 10개 중에 1개는 상수거,라고 쓰여 있었다. 다른 아이들 것보다 내 이름 줄기에 매달렸던 토마토가 가장 먼저 빨간색을 뽐냈다. 푸르스름하다가 빨간색이 조금씩 생기더니 완전히 빨개졌다. 그 과정을 아이들은 매일 지켜보았다. 드디어 그 빨간색의 절정을 보고 감격하여 달려온 것이었다.

“선생님, 익은 토마토 누가 먹어요?”

이제 아이들은 익은 토마토를 누가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어떻게 할까?”

모든 아이들이 함께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팀 줄기에 있는 토마토는 팀 친구들끼리 나누어 먹기로.

첫 번째로 빨간 토마토를 맛보던 팀 아이들 표정은 학급 아이들 모두에게 그 맛을 경험해 보고 싶은 갈증을 심어 주었다.

나도 내 그루에 열린 토마토를 먹었다.

“선생님, 나도 먹고 싶어요.”

아이들 주먹보다 조금 작은 토마토 하나를 여섯 명이 나누어 먹었다. 오물오물 씹어 먹는 아이들 모습, 어린 시절 시골에서 따 먹던 토마토가 생각났다. 따스한 햇살이 그대로 담긴 토마토였다. 그 햇살처럼 아이들 표정도 화사했다.


“선생님, 여기와 봐요. 토마토를 누가 파먹었어요.”
토마토에 흠집이 생겨 있었다.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좀 더 기다렸다 먹겠다고 놓아두었다가 당한 일이었다.

“까치가 그랬을까.” 나는 배고픈 새가 날아와 먹었나 보다, 라며 아이들이 억울해할 마음이 위로받기를 바랐다. 아이들은 누가 장난한 줄로 알고 속상한 마음이었다.
“까치도 배가 고팠나 봐요!” 내 말에 이어 아이들이 하는 말이었다.

아이들의 감성은 내 감성을 뛰어넘었다. 나는 아이들이 전해주는 감성을 풍부하게 만끽했다. 교사가 가르치지 못하는 그 감성들을 아이들이 키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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