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간의 미국 살이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어떻게든.
학교 졸업을 하고 다시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같이 살았던 친구와 함께 짐을 쌌다.
아마 같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 구하는 게 그렇게나 힘든 일 인지 모르고. 마냥 웃으며 짐을 쌌다. 나는 한국사람 그 친구는 미국사람. 같이 살면 빨리 집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생각도 그랬다. 아무래도 혼자 한국인이라는 라벨로는 집 구하는 게 어려우니깐. 그렇다고 한인이 많은 곳으로 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
짐을 한 5일은 싼 거 같았다. 미국에 오고 나서의 나의 짐들을 싸는데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 상자에 차곡차곡 짐을 쌌다. 나의 꿈도 같이 쌌겠지. 나의 삶은 이제 평탄하겠지. 조금은 이러면서. 같이 살기로 한 친구의 아버지가 도움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큰 유하울 1톤 짜리였나 난생처음 보는 큰 트럭이었는데 운전을 도와주시기 위해 오셨었다. 설마 이 트럭에 우리 두 명의 짐이 가득 차겠어? 하고는 가지고 가고 싶은 짐들을 다 실었다. 트럭의 반 이상이 가득 찼던 걸로 기억이 난다. 퀸사이즈 침대 하나 트윈사이즈 침대 하나 밥솥 소파도 가지고 갔었나? 빨래 걸이, 옷더미, 등 짐을 다 실고 나니. 시간이 저녁쯤 되었다. 우리는 그때까진 웃으며 우리 이사 잘하고 있구나 했다.
아버지가 트럭을 운전하셨고. 우리는 누군가의 차를 타고 뒤 따라갔다. 한.. 3시간은 걸린 거 같았는데. 저녁 8시쯤 출발했었나. 아니다 9시쯤이다. 유하울이 언제 문 닫을지 모르고 우리는 달려갔다. 다 같이. 다와갈때즘 이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언제까지 문 열어 두는지 찾아봤다. 11시 30분에 클로징. 하지만 우리는 아직 차 안.
한 10분은 더 가야 하는데. 그때 시간은 11시 24분.. 우리는 24시간 일거라고 생각하고 달리고 있었고. 친구들에게 이 말 을 하는 순간. 헐.. 우리 이제 어쩌지 저 많은 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가보자 라는 친구들. 그리고 나는 기도를 또 했다. 제발 우리 짐을 보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발. 제발. 그렇게 애타게 기도 했던 적은 그때 버스 안이었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우리는 11시 35분에 도착했다. 아주 깜깜했고. 나의 직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문이 다 닫혀 있었다. 잊을 수 없는 11시 35분 그때의 내 느낌. 1분 1분 갈 때마다 나의 기도소리는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차에서 내려 나는 문을 두드리며 다녔다.
쿵쿵쿵. 쿵쿵. 여기 아무도 없어요?
우리 좀 도와달라고. 한 문은 아무리 두드려도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문 두드리다가. 다들 포기 한 눈치였다. 나는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다들 지쳐 있었고 나의 짐.. 꿈들이 아직 트럭에 실려 있거든. 그리고 계속 다른 문을 찾으러 다녔고 문을 두드렸다. 누군가가 대답할 때까지. 쾅쾅쾅. 문을 열어 보기도 하고.
저기요 누구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