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완벽한 타인이 필요하다.

by 한수정

살다보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누군가 내 눈물을 받아주었으면 하는 때가 있다.


벌써 10년도 훨씬 지난 일이다. 대학가 근처 타로카페에 친구와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카페주인이자 타로마스터는 50대 가량의 깡마른 중년남자였다. 무뚝뚝해 보이고 잘 웃지도 않는 그는 필요한 말만 해줄 뿐 특별히 친절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타로 점괘는 비교적 정확한 편이어서 친구와 나는 작은 감탄을 연발하며 빠져들었다. 얼마 후 시간이 지나면 별것도 아니었을 고민을 가지고 다시 방문했고 우리는 여기를 단골로 삼으리라 생각했다.


그곳을 다시 찾은 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어느 겨울이었다. 오랜만에 만나 식사를 하며 신변잡기 이야기들을 하던 중이었다. 우리의 말들은 오후의 찬바람에 사라질 고만고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다 친구가 문득 타로를 보러 가자고 했다. 마침 근처였다. 지난번의 만족감을 떠올리며 친구는 약간의 설레임을 가지고 신년운세 겸 소소한 고민을 안고 그곳을 방문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온건 미래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그 당시 나는 누군가를 영원히 잃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그 가눌 수 없는 상실의 여파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친구는 분명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었다. 그리고 물어봤을 것이다. 누구 때문에 그러는 건지,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어떤 것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앞에서도 그 슬픔을 드러낼 수 없었다. 어떤 상처는 가까운 이에게조차 말할 수 없기도 하다.


친구가 먼저 타로를 보았다. 그녀의 점괘가 나오고 이런저런 말들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멍하기만 했다.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그녀의 미래도 점괘도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았고 들리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사람의 일이라는 건 알 수 없으며 어쩌면 나는 평생 일말의 자책감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런 내게 미래라는 건, 그걸 미리 점쳐본다는 건 적어도 그 순간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술에서 미처 완성되지 않은 말들이 맴돌았다. 그러다가 튀어나온 말은 친구에게 화장실 안 가냐는 엉뚱한 말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요의를 잊고 있었다는 듯이 순순히 다녀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가 자리를 비우고 그는 타로카드를 정리하며 내게 뭐가 궁금하냐는 예의 그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 타로카드를 보다가 테이블을 보다가 카페의 다른 자리를 보다가 천장을 보다가 바닥을 보았다. 정처 없이 흔들리던 내 눈동자에 정면의 타로마스터가 담겼을 때 그의 형상이 마구 일그러졌다. 그는 타로카드에서 손을 떼고 그저 가만히 있어주었다. 왜 그러냐고, 괜찮으냐고 묻지도 않았다. 잠시 후 내 앞에 휴지를 몇 장 놓아줄 뿐이었다.


“누가 죽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전후 맥락 없는 말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이 있긴 할까요.

하지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설명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내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어요.


그는 마치 목구멍 속에 삼킨 내 말을 들은 것처럼 나를 지그시 바라봐주었다.

나는 조금 더 울었고 그는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돌아온 친구는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향했다.


미적미적 일어나는 내게 그가 무어라고 한 마디 해줬는데 지금은 그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날 거기 갔던 자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후 나는 그것이 위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의 내게는 앞뒤 사정 설명할 필요 없이 그저 내 눈물을 받아줄 완벽한 타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끔 그를 생각한다.

그 역시 나와 같은 경험이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알았던 것인지.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었을지.


때로는 나를 잘 아는 이보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타인이 필요할 때도 있다.


당신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지금 왜 슬퍼하는지, 왜 힘든지 알 것 같아요.

한참 울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눈도 땡땡 부을 테지만, 눈물은 마를 것이고 통증과 부기도 점차 빠질 거예요.

그러고 나면 다시 살아갈 수 있답니다.

괜찮아요. 모두가 한번쯤은 그런 때를 맞이하곤 해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완전히 나아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질 거예요.


몇 달 후 우연히 지난 그 타로카페는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마치 나의 비밀을 그가 안고 사라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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