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보행자 작동 신호기를 켜겠어요.

평가가 아닌 인정을, 나를 마주하는 확신을

by 한수정


어느덧 마지막 회차 상담일이 되었다.


이 당시에 하고 있던 알바 스케줄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틀어지고 꼬이게 되었다. 중간에 몇 주의 시간이 붕 뜨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비용도 날리고 말았다. 알바를 1순위로 두지 않았다면 공백의 시간을 날리지도 않았을 거고, 그랬다면 지금처럼 후회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미련이 남았다. 결과가 그렇게 된 게 내 탓은 아니었지만, 그걸 감안하지 못한 지난날의 내 선택이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상담을 받으면서 조금 긍정적인 나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또 너무나 쉽게 예전의 나로 돌아가버리는 것 같아서 퇴행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상담사가 말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내가 계속 부정적인 마음이 들 때는 사고 중지를 해야 돼요. 인식을 하는 게 먼저예요. 인식조차도 못하고 있으면 계속 그 감정으로 빠져버려요. 그래서 내가 지금 나를 이렇게 보고 있구나, 하고 메타인지를 해야 돼요.

사람이 항상 잘할 수도 없고, 항상 못하지도 않아요. 들어보니까 그 상황이 예상치 못했던 것 같은데, 그럼 그걸 수정 님이 통제할 수 있었을까요?"


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거 봐요. 아니잖아요. 수정 님 탓이 아니에요.

내 탓이 아니야. 내가 나한테 그렇게 얘기해 줘야 돼요. 그래야지 내가 숨을 쉴 수가 있어요. 내가 나를 믿어줘야 그다음 나도 있는 거예요. 내가 살아야 그다음을 또 해결하든 뭘 하든 다음 기회가 있는 거지, 내가 나를 계속 뭉개서 죽여버리면 다음까지도 없어지는 거예요.

그런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만 해도 내 감정은 긍정적인 걸로 따라간다는 게 인지 이론이거든요."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예전에 연재를 하면서 받았던 악평이 하나 떠올랐다.

댓글이 달리는 일은 좀처럼 없었던 일이라 알림을 보고 바로 확인했다. 반가운 마음은 곧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그 댓글은 악평이라기보다는 내 글을 끝까지 읽어보지도 않고 달은듯한 말에 가까웠다. 그 댓글을 지울지 말지 망설였다. 당연히 지우고 싶었지만, 그걸 지우면 왠지 내가 나 유리한 쪽으로만 비겁하게 구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 댓글을 본 친구가 대신 화를 내주면서 자기도 이렇게 기분이 나쁜데, 나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도 그 댓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면서 당장 지우라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댓글을 그냥 두는 건 내가 비겁한 게 아니라 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도 연관이 있었다.


글은 괜찮게 읽었는데 댓글을 보고 나니 인상이 좀 바뀌네.

이런 댓글도 그냥 두고... 관리를 안 하나?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댓글을 지웠다. 지금은 그 댓글의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친구의 조언 덕분에 나는 비겁한 게 아니라 나를 지키는 선택을 했던 셈이다.


이후 연재를 이어 나가면서 구독자나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지 않더라도 전처럼 악평이 안 달리는 게 어디냐,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무소식처럼 잠잠한 반응에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내 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보통 지난날의 경험에서 어떤 인사이트를 얻어서 생각이 좀 바뀌었다거나, 아니면 힘들었지만 긍정적으로 뭔가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쓴 적이 많았다. 이게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엔가 내가 너무 비슷한 방향으로만 쓰는 건 아닌지, 내 글의 메시지가 자칫 교훈적으로 비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독자들의 반응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나만의 생각에 자꾸 빠져들게 되었다.


내 이야기에 상담사는 흥미롭다는듯한 눈빛으로 질문했다.


"그것도 되게 좋은 나를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내가 매번 이런 비슷한 방향, 비슷한 메시지로 쓰는 것 같네,라는 걸 알게 되니까 어떤 것 같아요? 그전에는 그런 느낌을 못 받았는데, 지금 알게 된 거잖아요."


"전환점이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뭔가 바꿔야겠다는 필요성은 느끼는데 그걸 어떻게 해야 될지는 잘 모르겠어서... 의욕적인 건 아니고 갈팡질팡..."


"그 마음을 한번 느껴보세요. 내가 왜 지금 이런 생각이 들었지? 그게 자기 인식이에요.

수정 님이 그래도 대중과 같이 호흡하려고 애쓰고 있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려고 신경 쓰고 있는 거잖아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한 게 아닌데도 내가 그걸 느끼고 있구나를 그냥 인지하고 알아챈 거예요.

지금은 마음에 안 들지 몰라도 여태까지는 이게 최선이었어요. 그렇게라도 써보는 게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걸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그게 없었으면 이것도 없는 거예요.

갈팡질팡 할 때는 갈팡도 있고 질팡도 있다는 거잖아요. 한번 해보면 되죠. 한 번은 이 길로 가보고, 또 한 번은 전혀 다른 길로 가보고, 아니면 저기로 가보자.

그럼 수정님은 전환점을 알면서 뭘 두려워하는 걸까요?"








내가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상담사는 핵심감정을 알아보는 테스트를 진행했다.

여러 문항의 질문에 대한 객관식 답을 시간을 오래 끌지 않고 바로바로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나의 가장 큰 핵심감정은 '두려움'으로 나왔고, 그다음 감정으로 '소외감'과 '그리움'이 이어졌다.


"어떤 거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많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실패하거나 안 되는 것에 대한 불안 같은 게 많지 않나 싶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것도 있는데, 뭔가 새로 했을 때 그게 잘 안 될까 봐요."


"잘 안 되면 어떻게 돼요?"


"좌절감이 들 것 같아요. 의기소침해지고, 기운도 빠질 것 같고."


"만약에 내가 노력했는데, 잘 안 돼서 의기소침하고 좌절감이 들었어요. 내가 실패해서 드는 이 감정은 맞는 감정이에요? 틀린 감정이에요?"


아... 그 말을 듣자 머릿속에 반짝, 하고 깨달음의 전구가 켜지는 듯했다.


"... 틀린 감정은 아니죠."


"아니죠. 그죠.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수정 님이 그 감정은 아니야, 그거 느끼면 안 돼, 네가 왜 지금 두려워하고 있어? 너 그러면 안돼,라고 자꾸만 얘기하다 보니까 이 감정은 느끼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고는 안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자꾸만 없어. 나 지금 두려운데,라고 내 감정은 얘기하고 있지만 난 두려운 너 안 볼 거야, 하다 보니까 내 감정을 자꾸만 소외시켜 버려요.

그게 아니라 만약에 내가 지금 너무 힘들고 두려울 때는 내 감정을 어떻게 해줘야 돼요? 너 두렵구나. 너 정말 힘들겠다. 그걸 누가 해줘야 돼요? 누구도 아닌 내가.

짝꿍이나 친구는 그렇게 해주는데도 불구하고, 본인은 안 믿어요. 수정 님이 그거는 내가 나 자신을 인정 안 해주기 때문이에요. 너는 그 감정 먹으면 안 돼. 너 다르게 해야 돼,라고 자꾸만 나를 바꾸려고 하다 보니까 내 감정에 머물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지금 슬퍼. 근데 여태껏 나는 내가 그런 줄 몰랐던 거죠."


틀린 감정이란 없다는 말이 내내 맴돌았다.


"우리 한번 다시 생각해 볼까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어요. 잘 안되면 의욕도 잃고 속상할 거야. 그게 최악이잖아요. 그죠? 난 최악을 알고 시작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해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하게 되면 어떨 것 같아요?"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뭔가 할 때 이거 잘 안 될 수도 있는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실제로 잘 안 된 적도 있었고. 그거를 미리 생각한다고 해서 이게 덜 힘들고 그렇지는 않더라고요."


"그때 하고 지금은 또 다를 걸요.

물론 실패하는 거 당연히 싫죠. 근데 나한테도 믿음과 여유를 줘야 돼요. 아이들도 일어서서 걷기까지 몇 백 번을 넘어져서 걷게 된다잖아요. 수정님이 이렇게 걷는 것도 사실은 되게 기적적이었어요. 어렸을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걷는 것 때문에 고민하지 않잖아요. 그죠? 수영은 또 어떻고요. 물에 안 빠지고 수영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몇 번을 넘어져도 봐줄 수 있는 단계라는 게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가 좀 보여요? 나한테 여유를 좀 주면 실패하는 게 어떨 것 같아요?"


"괜찮지 않겠지만"


지금 돌아보니 누군가 제3자가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대답한 것을 보고 답답해서 가슴을 쳤을 것 같다.


"잘 봐요. 내 옆에 친한 친구가 수정 님 같은 상황이라고 해볼게요. 그 친구가 계속했는데 등단도 안 되고, 작품도 잘 안 나오고 못해요.

수정아, 나 지금 진짜 죽을 만큼 너무 두려워. 나 정말 작가는 못 될 것 같아.

만약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가 있다면 뭐라고 얘기해 줄 것 같아요?"


"이왕 시작했으니까 조금 더 해보라고."


"뭘 믿고 하라고 그럴 거예요? 나 그래도 안될 것 같아. 이번에도 내 작품은 또 통과 안 될 것 같아. 어떡하지, 수정아?"


"지금까지 해온 게 있으니까 계속하다 보면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냐고..."


"그럼 나한테 수정아, 하고 그런 말을 해주세요."


이 부분에서 조금 웃었다.

데자뷔가 느껴지면서 상담사가 지난번처럼 나 자신에게 말해주라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게 싫었던 건 아니고, 앞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게 숙제이자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저는 제가 제 이름 부르는 게 왜 이렇게 쑥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자꾸 해봐야지 덜 쑥스러워요."


무슨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내 목소리는 개미만큼 작고 떨렸다.


"수정아, 이제 시도한 거니까 조금 더 힘을 내서 지금까지 노력했던 결과를 볼 때까지 해보자."


"수정 님한테는 계속 평가하는 나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이만큼 했다는 건 인정해주지 않고, 너 이거 못했네, 저건 해야지, 이렇게 평가하는 내가 있기 때문에 계속 소외당하는 거예요.

난 이때까지 열심히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사실 그거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거든요. 나 이만큼 했어, 가 있어야 되는데 그냥 퉁쳐가지고 아무것도 없어, 가 돼버리니까 내 노력이 안 보이는 거예요.

내가 노력했던 걸 계속 보려고 해 봐요. 내가 못했던 것만 보면 난 죽어야 돼요. 살 필요도 없어요. 근데 내가 이만큼 잘하는 거 있잖아요. 이걸 돌아보면 어때요?"


"그래도 이만큼 했구나."


"수정아, 너 이만큼 했구나,라고 들으면 좀 어떤 것 같아요?"


"결과가 크게 마음이 차지 않아도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라고."


"그런 마음을 먹는 거예요.

내 마음을 내가 어떻게 감정을 놓느냐에 따라 내 생각이 바뀌어요. 빠른 음악이 나오면 난 춤을 어떻게 춰야 돼요? 빠르고 신나는 춤을 추겠죠. 블루스 타임으로 가면 어때요? 천천히 춤을 추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어느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건지는 누가 정해요?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수정 님이 쓰고 싶은 글을 쓰려면 일상을 정말 잘 관찰할 수 있는 눈도 있어야 되고, 그걸 내가 어떻게 보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 다른 사람 공감도 필요하잖아요. 일상의 드라마라는 건 그냥 뻔한 내용이면 누가 봐요? 안 보죠? 그러려면 거기서 어떤 감정 포인트가 있는지 찾는 게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 수정 님한테는 이 감정이라는 게 참 중요하겠구나, 했던 거예요."


감정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상담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벌써 마지막 시간이 끝나가네요. 상담 쭉 받으시면서 어떠셨어요?"


"사실 맨 처음에는 제가 뭔가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도움이 될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얘기를 하다 보니 뜻밖의 발견들이 좀 있었어요. 뭔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고 인정하게 되는 게 많아진 것 같고요."


"우리 그동안 감정카드로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핵심 감정도 찾아봤잖아요. 하루하루 그 감정들 중 하나가 딱 꽂힐 때가 있을 거예요. 그럼 나는 왜 여기에 꽂혔지, 내가 왜 이 감정에 머물게 됐지, 그러고 한번 머물러 보세요. 내가 오늘 어떤 일 때문에 이런 감정이 드는 거구나. 그때 뭐가 있어야 되냐면 내 확신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점점 내가 나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게 돼요. 제 얘기 들어보니까 앞으로 어떨 것 같아요?"


"한번 해볼까,라는 마음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것만 있어도 돼요.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그냥 느끼면 돼요. 그러니까 수정 님이 부정적인 것도 이건 부정적이니까 느끼면 안 돼, 가 아니라 그건 그거대로 그냥 느끼면서 흘려보내는 거예요. 나는 이런 마음도 먹을 수 있고 저런 마음도 먹을 수 있어. 부정적인 마음을 느낄 수도 있는 거지. 그게 잘못된 건 아닌 거예요. 수정 님이 이제껏 본인이 선택한 음악에 맞춰서 춤을 췄던 거예요. 이제 알았으니까 바꿀 수 있는 거고요.

수정 님이 이 일을 할 때 자신감은 내가 나를 믿어주는 데서부터 시작이에요.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독자들이 원하는 마음도 읽을 수가 있을 거예요. 지금 나처럼 경제적인 것 때문에 혹은 마음 때문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이런 걸 내가 좀 대변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겠죠. 그러면 거기서 위안받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겠고요.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고 내가 위안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어요?"


"괜찮다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상담사는 흐뭇하게 나를 보며 웃었다.








마지막 회차 즈음에 리모델링 문제로 원래 상담받던 센터에서 다른 장소로 바뀌었다.

상담이 끝난 후, 센터를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신호가 바뀌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보행자 작동 신호등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다. 보행자가 신호등 버튼을 눌러야 작동하는 것이었다. 버튼을 누르고 잠시 후에야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며 건널 수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정답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 나를 통과시키지 않고 붙잡아두고 거르고 있었던 게 아닐까? 마치 조금 전의 나처럼 신호등이 바뀌지 않아 붙박이처럼 한 곳에만 하염없이 서 있는 아이 같았다. 그저 내 마음이 가는 대로 내 의지대로 언제든 건너가면 되는데, 그걸 몰라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이 나에게 답을 줄줄 알고 시작했지만, 알고 보니 그 답은 내가 찾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상담사는 길의 방향을 제시할 뿐, 내 마음을 찾고 만나는 키는 내가 쥐고 있었다. 신호등 버튼을 눌러야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상담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결실은 내가 나를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변해야 나의 정체성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객관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말이었지만, 나에게 실제로 대입해 보니 달랐다.

앞으로 조금씩 내 감정을 들여다보고, 평가가 아닌 인정을 해보려 한다. 내가 덜 흔들릴 수 있는 경계를 만들어 바운더리를 넓히고, 내가 내 보호자가 되어 나 자신을 좀 더 좋은 쪽으로 이끌어가고 싶다.

그렇게 나에 대한 확신과 자기 효능감을 조금씩 높여가다 보면 작지만 짧은 실패 그리고 더 나은 실패를 디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내가 원했던 것에 가까워질 수 있겠지.

누군가 좌절해서 힘들어하면 한 번만 더 해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그게 필요하니까. 내가 느꼈던 그 마음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괜찮다고, 분명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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