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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Aug 23. 2020

겁 많은 직장인의 전화공포증 + 거절공포증

이런 사람의 취재...월급은 괴로움을 버티는 비용 겁많은인간생존기ep.2

여러분 안녕하세요? 겁많은 인간 권귤입니다. 지난주 겁많은 인간의 재입사기를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댓글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웠어요. 힘이 됐다는 이야기에 제가 오히려 더 힘이 났고요. 저만 겁 많은 게 아니었군요? ㅎㅎ


이번주도 겁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겁나는 일 앞에 당당하게 고!는 못 외쳐도, 잠시 멈칫 했다가 조용히 고!를 속삭이는 타입입니다. 고를 외치고 나서도 자꾸 뒤를 돌아보죠. (하,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하고요. 그래도 일단 저지른 일이기에 돌이킬 순 없습니다. 일단 저지르는 게 용기입니다.

Photo by cottonbro on Pexels.com


이번주는 취재할 일이 많았습니다. ‘취재’ 아니 겁많은 인간이 무슨 취재냐고요. 어떻게 PD를 하냐고요. (그러게요. 저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저는 거절공포증, 전화공포증이 있는 사람입니다. 


거절공포증


취재는 거절의 연속이에요. 전화해서 “이러저러한데 이야기좀 해주면 안돼요?” “이러저러한데 가서 촬영하면 안돼요?” 라고 요청했을 때 “ㅇㅋ 하시오!”를 받기란 쉽지 않죠. 솔직히 제가 전화를 받는 입장이라면 저같아도 “ㄴㄴ”를 할 것 같아요. 저는 ㄴㄴ라는 답변을 주시는 분을 매우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ㅇㅋ라는 답변을 주시는 분이 아주 특별한 분인 거죠.


취재는 ㅇㅋ라는 답변을 주실 '특별한' 분을 찾는 과정입니다.


또 취재는 어떻게 하죠? 일단 ‘전화’부터 돌리는 거예요. 네 맞아요. 저 전화공포증.


전화공포증


어느정도 심하냐면요, 어릴 땐 친한 친구조차 제게 전화를 할까봐 두려웠어요. 최대한 문자로 커버하려 했죠. 문자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전화를 한다? 그러면 못본척 하고 안받았어요.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이 미디어 업계에 와서 취재를 하려니까 고역인 거예요. 일단 전화가 연결되면 머리가 새하얘져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대략 대본을 만들어놓고 전화기 앞에 앉아요. 질문할 거리들, 빼먹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을 순서대로 적어두고 전화를 해요. 가운데 중간중간 애드립도 빼먹으면 안 돼요. 질문내용만 말하면 로봇 같으니까요.


이번주는 코로나 관련, 편의점 관련 취재를 했어요. 코로나 관련해서는 전화를 많이 돌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편의점 관련해서는 이 취재원이 아니면 영상은 수포로 돌아가는 위기의 순간이었죠.

두려움은 이거였어요.


안 되면 어쩌지? 거절당하면 어쩌지?

Photo by cottonbro on Pexels.com


그랬을 때 최악의 상황: 전화 받은 상대에게 욕을 먹어서 기분이 나빠진다. 취재를 못해서 영상을 제작하지 못한다. 영상 제작 시기가 뒤로 밀려난다. 영상 주제를 바꿔야 한다. 야근을 한다.

(엥? 생각보다 최악이 아니네요?)


그랬어요. 두려웠지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별로 최악이 아니였어요.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죠. 욕을 먹어서 마음이 상하는 때는 있잖아요? 그럴 때면 회사 앞 스타벅스에서 맛있는 커피 하나 사서 쭉 들이키면 해결되는 문제였어요. 그걸로도 마땅하지 않다면 어디 가서 돈 내고 꽃이나 도자기 원데이클래스 들으면서 까먹으면 될 일이었고요. 다 해결 가능한 일이었네요?


그래서 이번주 결과는요: 눈 딱 감고 전화 돌렸습니다. 
1) 코로나 관련해서는 4명에게 컨택해서 2명과 인터뷰했고, 2분 다 인터뷰에 긍정적으로 임해주셨습니다. 
2) 편의점 관련해서는 그 중요한 한 분이 촬영에 응하겠다 하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면 뭔가 되긴 되네요. 실패했더라도 분명히 ‘배움(깨달음)’이 있었을 테죠. 이번주엔 용기를 내어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걸 봤습니다.

Photo by Redrecords u00a9ufe0f on Pexels.com


어차피 ‘월급받는 일’이라는 건, 누군가가 억지로 하지 않으면 절대 이뤄질 수 없는 일을 내가 그 키를 잡고 억지로 이뤄낸 뒤, 돈을 받아내는 과정이니까요. 용기내고 무서워하고 억지로 일을 진행되게 하는 과정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용기’만 내면 어떻게든 끌고나가서 작업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겁쟁이가 ‘용기’를 내야 일이 진행되는 직업에 종사하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요, 벌써 6년째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게 제 일인가 봐요.


이번주엔 어떤 새로운 ‘무서움’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기대하면서 잠을 청해보겠습니다.


권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tangerine.s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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