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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Sep 18. 2016

우리 개는 백내장이다

그래서 내가 더 슬프다

어느 한 군데도 나무랄 데 없었다.


누구보다 건강했다. 세 달이 채 되지 않은 이 작은 생명체는 어느 한 군데도 나무랄 데 없었다. 튼튼한 두 뒷다리는 자기 키를 훌쩍 넘는 소파 위를 넘봤고, 귀는 또 얼마나 예민한 지 작은 소리에도 컹컹 짖어댔다.


산책은 너무나 힘들었다. 일단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그냥 뛰었다. 무서울 정도였다. 10분만 나가 있어도 난 두 손 두발 다 들었다. 사람이 당하는 똥개 훈련이었다고나 할까.


언제까지였더라. 작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올해 여름, 우리 강아지가 달라졌다.

7월 말, 회사를 그만둔 뒤 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많았다. 오후에는 반드시 산책을 시켰다.


어디를 가도 앞장서는 애였다. 뭐가 그리 급한지 헐레벌떡 뛰곤 했다. 뒷다리가 약해 등산은 삼갔지만, 꼭 내려달라고 발버둥을 쳤었다.


그런데 이젠 가만히 서 있다. 모르는 곳이면 그냥 멈춘다. 앞으로도, 뒤로도 가지 않고 몸이 굳어버린다.

그렇다 우리 강아지는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거다.

백내장은 1-2년 전부터 시작됐다. 강아지가 10살이 훌쩍 넘으니 서서히 눈에 하얀 혼탁이 나타났다. 병원에서는 "강아지들은 후각이 시각보다 더 발달했으니, 그냥 두셔도 돼요"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우리 집 강아지도 평소와 다름없이 정신없이 뛰었다.


"강아지들은 후각이 시각보다 더 발달했으니, 그냥 두셔도 돼요"


우리가 느끼게 된 건 올해가 훌쩍 넘어서였다. "센~"을 불러도 애 먼 곳을 쳐다보고, 맨날 가는 공원에서도 발을 헛디뎠다. 깜깜한 밤에는 화장실을 찾으려 세탁기 앞, 동생 방을 전전했다.


절정은 추석 연휴 글램핑장에서. 우리 강아지는 가만히 있었다. 다른 집 개들이 "같이 놀자아~"며 코를 킁킁대고 우리 집을 찾아와도 우리 개는 엄마만 찾았다. 엄마를 찾아오다가 테이블에 머리를 툭 박히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를 찾겠다며 아픔을 누그릴 틈 없이 어두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지난해랑 너무 달랐다. 2015년 처음 가본 애견 펜션에서 앞마당과 뒷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개가 바로 우리 개였다. 고기 한점 얻어먹겠다고 뒷마당 바베큐장에 계단을 펄떡이며 오던 개가 바로 우리 개였다!

아무리 노화라지만, 건강했던 개의 이런 변화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슬픔을 안겼다. 한쪽 눈에 200-300만 원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백내장 수술 가격도, 너무 늙어서 수술하다 죽을 수 있다는 의사의 얕은 설명도, 모든 걸 해줄 수 없는 이 현실도.


이 작은 강아지는 우리 가족이랑 살면서 정말 행복했을까?


이 작은 강아지는 우리 가족이랑 살면서 정말 행복했을까? 애완견 로봇이 돼 원하지도 않은 가정에서 한 평생 갇혀 살았다는 후회에 잠겨있는 건 아닐까. 조금 더 산책을 많이 했다면... 조금 더 자주 씻었더라면...


언제까지 우리 가족이랑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침대 밑에 우울한 표정으로 엎드려있는 걸 보면 내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남은 시간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사실 많이 없다.

최근 한 친구에게 "ㅇㅇ는 잘 있어?"라고 물었다가 눈물을 보고 말았다.

"다른 개들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어..."

그 모습이 요즘 자주 떠오른다.


한 시간이라도 더, 내게 주어진 이 생명체와 행복하게 보낼 테다. 절대 후회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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