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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귤 Sep 25. 2016

냉정해야 잘하는 직업

"취재 잘 하는 사람 치고, 일 못하는 사람 없어"

취재.

극 내향성인 내게 너무나 어려운 주제다.

지난 직장보다는 한결 편해졌지만, 여전히 어렵다. 지금은 전화 돌릴 일이 더 많아졌다.


010-XXXX-...

누를 전화번호를 눈으로 훑으면서부터 긴장은 시작된다.

꼴깍. 지금 전화해도 되는 걸까. 괜히 싫은 소리 듣는 건 아닐까. 어휴. 기분 나쁜 소리 들으면 하루 종일 잡치는데, 어쩌지.


온갖 걱정에 싸여 번호를 누른다. 상대 이름과 내가 물어볼 것을 재차 확인한다.

통화버튼을 누르기까지가 긴장 최고조다. 가끔 숨이 가빠진다.


따르릉. 따르르르릉.

신호가 가면 긴장은 조금 누그러지지만, 후우, 글을 쓰는 지금도 숨을 한번 몰아쉬게 된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 입니다"


기자에서 에디터로 직함을 바꾼 뒤, 삶은 좀 나아질 줄 알았다. 에디터는 그야말로 '에딧(edit)' 산재된 글을 편집해 내놓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뭐람. 전보다 취재할 일이 10000000배 많다.

취재가 왜 힘드냐면,

남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기사를 쓰고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나는 '바로 당장!' 답변을 얻고 사진을 받아야 한다. 그게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숙명이랄까. 뭐든지 빨리 정확한 정보를 받는 게 최고다.


지난주, 바로 전날 세상을 떠난 '고인 목소리' 파일을 받는 게 내겐 숙제였다. 

유족들에게 전화를 돌려야 했고, 고인 학원 선생님을 나는 '재촉'해야만 했다. 하루에 전화를 10번은 건 것 같다. 제자를 잃은 스승에게, 파일을 받기 위해, 그리고 멘트를 따기 위해.


내가 생각해도 참 무자비했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내가 가족을 잃었는데, 혹은 친구를 잃었는데 기자가 자꾸 전화를 건다면? 사진을 달라, 목소리 파일을 달라, 어떤 사람이었느냐 자꾸 묻는다면, 나는 어떨까. 세상이 이미 한번 무너졌는데, 세상이 내 뒤통수를 한번 후려치는 느낌이 들었을까.


나는 전화를 돌리면서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잊고 싶은, 아픈 기억. 억지로 들춰내고 생채기를 더 깊게 파고 싶지 않았다.


'휴 그래도 어쩌겠나' 싶지만, 괴롭다. 남을 조금이라도 아프게 하는 건.


지금은,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상대에게 사진을 받고 있다. 메시지를 나누면서도 미안함이 머리 끝까지 차오른다.

같이 일하는 상사들은 한결같다.

언제든 통화버튼을 누른다.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표정 변화도 없다. 경험 덕인가, 성격 차이인가, 직업 정신인가.


상사들은 말한다.

"전화 취재 잘 하는 사람 치고, 일 못하는 사람은 없어"

이걸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불편함을 피해 이곳으로 왔지만, 또다시 취재의 덫에 걸렸다. 이젠 그러려니 해보자! 하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다. 정말 어렵다. 어려워 죽겠다!!!


백수였을 때를 생각해 보면 기사가 쓰고 싶었고, 이 자리에 와서 보면 취재하기는 싫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취재와 내 인생은 친해질 운명일까.

월요일을 앞두고 어이없는 다짐을 해본다.

"그래 무자비해 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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