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걷는다, 나를 다시 만나는 길 위에서

by 김수연

오늘 아침도 남편과 함께 오라케이 베이슨을 걸었습니다.

조용히 밀려오는 바닷물을 바라보며,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올라왔어요.

“이렇게 50대를 흘려보내도 괜찮을까?”


나는 누구보다 가족을 중심에 두고 살아왔습니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데이트립을 떠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고, 무엇보다 소중했으니까요.

그래서 친구들이 여행을 가자고 해도,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가족이 있는 곳이 늘 나의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하고 싶었던 것들, 품고 있던 꿈들,

그 모든 것들이 까맣게 잊힌 채

내 안 어딘가에 깊이 묻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젯밤, 잠들기 전 일기장을 펴 들고 처음으로 제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왜 언제나 남편이 시간이 나기를 기다렸을까?”

“왜 나만의 여행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남편은 정말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입니다.

일주일 내내 바쁘게 일하고, 여행지에서도 끊임없이 전화를 받고 이메일을 확인하죠.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짜증이 났고,

그러면서도 또 미안해졌어요.

그래서 점점,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여유를, 가족 모두의 시간을, 그 언젠가를.


하지만 이젠 알게 되었어요.

더는 나를 미루고 싶지 않다는 걸.

내 삶을 뒤로 두지 않겠다는 걸.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아들과 함께

그가 아직 나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지금, 단둘만의 여행을 떠나기로요.

아들이 사회인이 되고 나면, 이렇게 오롯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는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이 여행들은 모두 아들의 방학 기간을 활용해 미리 계획한 일정이에요.

4주 후엔 아들과 함께 멜버른으로 일주일간 다녀오고,

11월 말엔 한국으로 3주 여행을,

그리고 내년 3월에는 3개월간의 유럽 여행을 함께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탁에서, 남편과 아들에게 조심스럽지만 단단한 마음으로 이야기했어요.

“이건 그냥 여행이 아니야.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이고,

너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긴 여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계획한 거야.”


그 말은 단순한 일정이 아닌, 내 인생을 향한 선언이었습니다.

말하는 순간,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현실이 되었고,

그 순간 저는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래, 당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걸 해봐.”


그리고 아들은 이렇게 말해줬어요.

“엄마, 정말 멋진 생각이에요. 진짜 좋은 마인드셋 같아요.”


그 한마디에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벌써 20개국 넘게 여행한 아들은 여행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잘 알고 있기에

제 선택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지지해 주었어요.


그래서 저는 오늘도 걷습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저를 다시 만나기 위해.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 길 위에서 조금씩 다짐하며 걷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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