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은 존중이 아니다

내가 느낀 예의, 그 사람에게는 아니었다.

by 수이빌리지

PH-25-002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했다.

받은 음료를 한두 모금 마시고 나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내용물에 뭔가 섞여 있었고, 분명히 잘못된 제조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이거 안에 뭔가 이상한 게 들어 있어서요... 확인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나는 최대한 불쾌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고, 정중하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건조한 표정, 짧은 한숨, 그리고

“그거 원래 그런 거예요”라는 불친절한 말투였다.

그 순간, 나도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응대가 너무 불친절하네요”라며 컴플레인을 걸었고,

돌아오는 길에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는 형식을 지켰다.

예의를 갖췄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고, 불만을 공격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고,

어느새 나조차도 '예의라는 틀'을 내 편으로 삼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저 사람은 저래?"

그건 정말 존중일까?

형식은 겉에 있고, 존중은 속에 있다.

형식은 사람 사이에서 불필요한 충돌을 줄이고, 일종의 안전장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형식이 먼저이고, 형식을 ‘지켰으니’ 된다는 식의 생각은 위험하다.

‘예의’를 지켰다는 건 나 혼자 판단하는 형식이고,

‘존중받았다’는 건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다.

형식은 보여주는 것이고, 존중은 전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런 착각을 한다.

“내가 인사했으니까”, “정중하게 말했으니까”,

“내 감정은 숨겼으니까”

→ 나는 예의 바른 사람, 존중을 아는 사람.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상대가 나의 태도에서 존중을 느꼈는가?

그게 없었다면, 아무리 형식을 지켜도 본질은 빠져 있는 것이다.

형식은 때때로 자기 위안이 된다.

'나는 할 만큼 했다’는 말은, 때로는 나 자신을 위한 방어다.

상대를 향한 존중보다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물론 형식도 필요하다.

하지만 형식이 진심을 가려서는 안 된다.

형식은 존중을 전달하는 수단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존중은 아니다.

우리가 형식보다 태도를 먼저 고민하고,

상대의 감정을 먼저 돌아보는 문화가 자리 잡힌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관계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게 우리가 아직 제대로 갖지 못한 현대 사회의 희망이 아닐까?

나는 그날, 음료에 이상한 게 섞여 있었다는 사실보다

그 직원이 내 말을 들으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더 불쾌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라도 뭔가 다르게 해보자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나는 먼저 이렇게 물어볼 것이다.

“바쁘셨을 텐데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혹시 확인 가능하실까요?”

그리고 대답을 들을 땐, 말이 아니라 눈을 보고 반응하려고 한다.

작은 차이지만, 이런 순간에야말로

‘나는 당신을 단지 직원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진심으로 누군가를 존중하고 있는가?

아니면 형식 속에 숨은 자기 위안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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