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폐쇄병동의 세 번째 이야기
입원하기 전, 내가 얼마나 심각한 정도인지 알지 못했다.
감정의 그래프가 치솟을수록 우울과 불안의 구덩이에 고꾸라졌다. 식사를 자주 걸렀고, 어떤 날은 방 안 한구석에서 불도 켜지 않고 울기만 했다. 자해의 빈도와 강도가 심해졌고 사람과의 관계에 매달렸다. 그 상황에서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운동을 했다. 직장에서는 누구보다 밝았고, 주변 사람들은 내가 상큼하다고 했다. 그렇게 남도 나도 모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권유로 입원 진단서를 직장에 제출했다. 당시 상사분들은 오히려 내 걱정을 해주셨는데, 내 업무에 대한 책임감은 죄책감이 되어 돌아왔다.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지금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정신과 입원 2회 경험을 통해 필요 물품을 챙겼다. MP3를 중고로 사서 플레이리스트 몇 개를 넣었고, 종이컵, 슬리퍼, 그리고 몇 권의 책을 들고 갔다. 일기장에 붙어있던 인덱스 끈은 잘려나갔다. 그 짧은 줄이 뭐가 위험하다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편의점에서 티머니 카드를 사주셔서 그걸로 전화를 했다. 핸드폰 물론 사용금지라서. 입원 후 일주일 정도에 간호사 선생님과 같이 편의점에 가서 과자도 샀는데 그때만큼 과자가 그렇게 재밌고 맛있던 때가 없었다.
7시 정도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약을 먹는다. 약을 먹고 꼭 입 안, 혀 밑을 확인한다. 아침에 주치의 선생님이 회진 도실 때 증상 얘기도 하고 면담도 했다. 오전에 미술 시간이 있을 때도 있고, 노래방 기계랑 닌텐도 wii가 있어서 그걸로 노는 시간도 있었다. 점심도 아침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탁구를 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TV도 있어서 그때 <선재 업고 달려>를 많이 봤다. 아침저녁으로 혈압을 재고, 저녁에는 배변 여부를 체크한다. 샤워기는 짧아서 쭈그리고 씻어야 했다. 자기 전 약을 먹은 후 10시에 소등을 하고 잠에 든다. 그리고 반복.
당시 다른 환자들과 친하게 지냈고 간호학생들과 친하게 지냈다. 한참 어린 노란 머리 남자애가 누나 예뻐요, 하기도 했고 울고 있을 때 도움을 주신 간호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내 식사량이 점점 늘자 칭찬해 주신 분도 계셨고 아이스아메리카노만 마시던 내가 마신 믹스커피의 맛도 잊지 못한다. 한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그분 출근도 기다렸었다.
폐쇄병동은 꼭대기인 18층에 있었다. 살짝 열리는 창문에선 봄내음이 났다. 내가 자취하던 집 골목도 보였다. 밤거리 불빛이 반짝일 때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지곤 했다. 약, 입원, 치료에 대해, 그리고 '앞으로'에 대해 고민을 했다.
퇴원 이후에도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입원 자체가 모든 것을 드라마틱하게 나를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 다만 폭주하던 속도를 조금 늦춰줬고,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여백을 만들어줬다. 버틸 때까지 버티는 건 미련하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면, 그게 며칠이라고 해도, 손길을 잡길 바란다.
<정신과 폐쇄병동의 세 번째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