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적 삶과 시의 위안_2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중심으로

by Sophia
삶의 장애가 있으나, 멜랑콜리 기질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장점이 존재한다.

니체의 관점에서 우울은 이 고통을 삶의 운명으로 여기고 사랑해야 해소된다. 고통을 원동력으로 삼아 끊임없이 문화예술 창작에 도취하는 광기야말로 고통을 승화시키는 자세다. 그렇기 때문에 멜랑콜리는 예술과 떨어질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멜랑콜리와 함께 살아갔다.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헤밍웨이 등 많은 이들이 우울을 앓았지만, 예술을 통해 적극적인 멜랑콜리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독창적인 작품을 창작하기 위해 자신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갔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 말을 건넨다. 이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분열된 채 존재하는 또 다른 자기와 화해하기 위해서다. 이는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에서 잘 드러난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등불을 밝혀 우울을 조금 내몰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올 아침을 기다린다.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아침도 있지만, 어쩐지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은 아침도 온다. 그런 에너지가 있는 아침을 기다리는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원인을 찾지 못할 때는 자연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나의 감정을 관조하고 그것이 흘러가도록 두는 것이다.



‘최후의 나’가 나에게 작은 손을 내민다는 것을 내면아이와의 화해로 볼 수도 있다. 인간의 무의식 속에는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로 인한 자아가 있다. 수치심을 지닌 자아는 심리적 무감각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내면아이와의 화해가 필요하다. 최초의 악수는 눈물과 위안으로 잡게 된다. 분열된 자신과 화해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필요로 할 것인가? 나는 매 심리 상담마다 눈물을 한 바가지씩 쏟아낸다. 나의 감정을 말로 정리하는 것은 물론 생각하는 것마저 너무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에게 위안을 건넨다. 분열된 자아와의 화해는 「자화상」에서도 잘 나타난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화자는 산모퉁이를 돌아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 조용한 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안에는 평화롭고 때 묻지 않은 자아가 있다. 이 시의 주체는 자신으로 생각되는 사나이를 가여워하다가, 미워하다가, 그리워한다. 이런 변화하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화해를 기다리는 또 다른 나는 침착하게 작은 손을 기다린다.



지금까지 철학적 우울인 멜랑콜리에 윤동주 시인의 작품을 대입하여 술회하였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멜랑콜리와 떨어질 수 없다. 이 정서는 가장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반대로 가장 창조적이고 천재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우울이 광기로 빠지지 않고, 위대하고 숭고한 멜랑콜리로 승화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가 많은 도움이 된다. 시를 읽는 과정에서 단어의 아름다움에 치유받고, 단어가 엮여있는 구조를 읽으며 자신의 삶이 어떻게 엮어져 있는지도 성찰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을 대입하여 읽으면 시가 나의 아픔에 공감하며, 이해하고 위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윤동주의 「새로운 길」에서는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비록 매일이 비슷한 일상일지라도, 멜랑콜리를 느끼는 사람에게는 매일이 도전의 연속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의 길은 어제도 갔지만 오늘도 갈, 내일도 갈 새로운 길이다.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가지고, 절망적인 멜랑콜리에 무릎 꿇지 않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멜랑콜리로 나아갈 길이다.




<멜랑콜리적 삶과 시의 위안>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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