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맞춰 놓은 알람시계가 울리기도 전 남편은 미리 일어나 커피를 만들고 있었다.
나 역시 밤새 잘 자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알람이 울리기도 전 그 시간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창으로 보이는 카리브해의 작렬하는 태양과 야자수 나무, 수영장을 보면서 그제야 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남편이 건네준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하루가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야릇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콩당콩당 뛰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식사는 뷔페로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운동장만 한 식당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도 자리를 잡은 후 곧바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워 담았다.
토스트를 해 먹을 수 있는 빵 종류만 해도 하도 많아 뭘 골라야 할지 모를 정도였고, 프렌치토스트에 크레이프, 팬케익까지, 또 직접 만들어주는 신선한 과일 주스의 종류도 워낙 많아 뭘 선택해야 할지 선택장애를 느낄만큼 갖가지 음식이 만반의 준비를 이루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 모든 것이 다 공짜이니 처음엔 속으로 ‘카아악! 실컷 먹어야지!~’ 하면서 신났던 게 사실이었지만 마음과는 달리 보는 것만으로도 질려버려 그다지 많이 먹진 못했다는 팩트를 전한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해변가로 향했는데, 와우! 처음 보는 카리브 해안의 해변은 어찌나 색이 그리도 선명한 바다색인지. 푸른 청록의 바다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고나 할까?
이른 시간임에도 해변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갖가지 수영복과 몸매를 감상하는 일도 이런 여행의 남다른 묘미라고 여기면서 열심히 그들을 관찰, 비교, 분석(?)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행지 어디를 가든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인 듯!
그 후 수영장 근처로 자리를 옮겨 책을 읽으면서 유유자적하고 있다 보니 또 깜박했던 게 떠올랐다.
‘아참! 여기선 음료도 다 공짜지?~’
그래서 남편이 바에 가 시원한 마가리타와 피나 콜라다 한 잔씩을 주문해 왔고, 우리들은 나중에 계산될 계산서 걱정 하나 없이 그저 신이 나 칵테일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이런(?) 것에 적응이 잘 안 된다던 남편도 어느새 익숙해졌는지 마가리타를 연거푸 세잔이나 마시는 게 아닌가?
술을 못하는 나 역시 '이참에 한 번 나의 알코올 섭취량과 도수를 좀 높여봐!?'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 보기도 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점심은 어젯밤에 보았던 해변가의 식당에서 하기로 하고 가 봤더니 그곳에선 즉석에서 구워주는 햄버거와 새우그릴의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샌드위치 파니니와 즉석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고 있었고, 뷔페 식으로 마련된 또 다른 코너에는 여러 가지 음식들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사방팔방 먹을 것이 지천인데, 참 안타까운 것은 호텔은 그렇다 쳐도 조금만 호텔을 벗어나면 전기불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허다하다는, 세계에서 8 번째로 가난한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고 하니 한 지역에 극과 극이 존재한다고나 할까?
여행지에까지 와서 뭐 세상 부의 불공평, 뭐 이런 걸 생각하는 자체가 좀 우습기도 하지만 숨길 수 없는 현실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는데, 그럼에도 이와 연관된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낮에 잠깐 참가했었던 가이드의 설명 중에 이 나라 사람들은 원래 이렇게 살아와서 무사태평하기가 이를 데 없단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이 생각하는 만큼 스스로를 비참하다고 전혀 생각지 않고 있으며, 아주 평온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단다. 너무도 다행스럽게 말이다.
그런데 정말 이곳에서 지내다 보니 그들의 사고방식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과 여러 면에서 순수한 듯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물이 아직은 확실히 들지 않았다는(일부 호텔 근무자들에게선 팁의 위력, 다시 말해 돈의 힘을 느낄 수도 있긴 했지만)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영장 근처에서 책을 읽다, 낮잠도 잤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방으로 돌아와 또 TV도 시청하면서 쉬다, 또 잠깐 눈을 붙였다 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는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고, 마시고, 놀고, 쉬고~ 가 다인 듯한데, 뭐 어찌 생각해 보면 이런 인생도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축복받은 삶이다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막상 이렇게만 살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살짝 궁금해졌던 게 사실이다.
저녁은 해변가에서 해산물을 먹기로 하고 그곳에 가봤더니 한쪽은 스테이크를, 또 다른 한쪽에는 해산물을 서빙하는 식당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곳으로 안내돼 자리를 잡은 우리가 오늘 하게 될 저녁식사는 '알-라- 카뜨'라는 정식 코스인데, 전채요리부터 메인까지는 메뉴에서 직접 골라 주문을 하고, 디저트는 우리가 직접 가서 고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남편과 나는 전채요리는 다르지만 메인 메뉴로는 둘 다 '랍스터 구이'를 주문했다.
음식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역시나 간은 우리에게 조금 짠 듯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다시 건물 중앙에 마련된 바(Bar)로 장소를 옮겨 자리를 잡고 앉았다.
조금 후 그곳에서는 색소폰과 올갠 연주가 공연되었는데, 멋진 카리브해의 구릿빛 피부에 검은 양복과 레게 헤어스타일로 한껏 멋스러운 색소폰 연주자는 동작 하나하나가 다 흥취를 돋우는 훌륭한 뮤지션이었고, 연주 솜씨 또한 일품이었다.
거기에 더해 그의 연주에 맞춰 댄스를 즐기는 관객들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멋진 밤을 장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