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래도록 해도 지겨워지지 않는 것들을 내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탑 5위에 들어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다.
일단 이전에 한번도 밟아보지 않는 땅을 밟는다는 흥분감과 그곳에서 보게 될, 느끼게 될, 맛 보게 될 모든 것들에 대한 야릇한 기대감은 차치하고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지니고 있는 나로서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그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은 나를 충분히 들뜨게 한다.
굳이 남들이 하는 대로 우리도 흉내내자고 작심한 건 아니지만, 길고도 긴 몬트리얼의 겨울을 견디는 한 방법으로 작년부터 시작한 게 피한 여행이다.
이왕이면 따뜻한 남쪽나라로, 별 신경 쓸 거 없이 쉬었다 올 수 있는 편리한 방법(모든 것이 다 포함된 All Inclusive Package 여행)으로 카리브 해안의 한 나라를 지정해 떠나는 여행을 두 번째로 떠났다.
카리브 해의 입문이라고도 불리는 쿠바에서도 동쪽에 위치해 있는 “홀귄”으로….
사실 이 여행은 남편과 내가 중국, 한국을 다녀온 후 일, 이 주일 쉬었다 가려고 했던 거였는데, 뜻하지 않게 남편이 중국으로 다시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겨 늦춰졌다.
해서 우리가 계획했던 시기에 갈 수 없다는 불편함에 비용까지 더 부담해야 할 경우를 고려해 남편의 회사
에서는 우리에게 차액을 보상해주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걸 받아들인 남편은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중국 출장을 한 번 더 다녀올 수 있었다.
사실 출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한 마디 덧붙이자면, 나야 남편 따라 가면 그저 편하게 놀고 먹는, 그야말로 여행이지만 남편은 해외로 출장을 가면 그곳 시간으로 밤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로 많이 피곤해 한다.
그럼에도 워낙 내가 낯선 곳을 방문하는 걸 좋아하니 때로는 나 때문이라도 출장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러하니 당연히 나는 기쁘면서 또한 많이 미안해지기도 하고 그런 이유에서라도 가끔은 투정부리고 어긋장 부리는 남편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 여행은 지난 번보다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우리가 가려고 했을 때보다 무려 일인 당 가격이 700불이 비싸졌으니, 결과적으로 작년보다 둘이 합쳐 1,400불이 비싸졌다) 고 말할 수 있겠는데, 우선 지난 번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묵었던 호텔이 별 4개 반이었다면 이번 쿠바의 호텔은 별 다섯 개로, 듣기로는 그 지역에서 제일 좋은 호텔이라고 했다.
그리고 손님들의 분포를 보니 주로 유럽에서(그 중에서도 영국인들이 가장 많았다) 온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이번 쿠바 여행에서 가장 먼저 의외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쿠바인들은 주로 흑인, 아니면 스페인 후예들과 섞인 혼혈인 일거라는 거였는데, 나의 이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 쿠바에는 아주 다양한 인종들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오히려 흑인보다는 백인이 더 많았고, 쿠바 토박이 다시 말해 원주민들과 각국에서 온 이민자의 후예들이 많아 보였고, 완전히 흑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단 몇 명 밖에 보지 못했다는 것도 그간의 나의 생각이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확실히 증명했다.
뭐 단 일주일을 보내고 이렇게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 그 동안 살아온 나의 인생여정에 따라 그간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가슴속에 박혀있는 그 무엇인가는 쿠바인들의 참으로 낙관적이고도 가무를 즐기는 모습이 어째 낯설지가 않다는 거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건 영락없이 우리들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 거였고, 그들 역시 우리들처럼 음악에도, 춤에도 일가견이 있고, 또한 무한히 즐기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일주일(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간혹 일주일이 아닌 이주일, 아님 그 이상을 체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동안 그들의 활달한 기운에 빠져 매일이 흥분되고 즐거웠던 나날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물론 이 말은 ‘리조트’ 라는 성격상 매일 있었던 쇼, 또는 파티의 분위기만을 보고 하는 말은 아니다.
바깥은 몰라도 호텔 종사자들의 분위기에서도 그들의 낙천적인 면모가 느껴졌었으니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일단 우리는 그곳에 즐기러 간 것이고 그야말로 모든 걱정과 시름 내려놓고 푹 쉬었다 오려고 그곳을 찾은 것이니 그 목적(?)에 맞게 일주일을 진탕 먹고, 마시고, 즐기는 걸로 우리의 시간을 보내기로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 약속은 아주 잘 지켜졌다고 보여진다.
나는 그래도 중간쯤부터 그나마 먹는 걸 자제했지만(물론 마시는 건 워낙 영 아니었고^^) 남편은 평소보다 과식한 결과 중국 출장이래로 무려 7 킬로가 늘었다는 걸 봐서도 그렇고, 쿠바에 왔으니 쿠바 시가 한 번 정도는 피워봐야겠지? 하면서 담배도 못 피우는 우리는 시가를 입에 물고 연기를 피워보기도 했고, 매일 밤 쇼를 즐기면서 친구도 만들어 함께 흥겨워했으니 말이다.
이런 리조트, 또는 타 여행지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같은 여행객들이든, 아니면 현지인과 여행객들이든 서로가 서로를 주시하면서 탐색하는 그 행위에서도 알게 모르게 흥분과 묘한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어쩜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또 해 보게 된다.
타인의 취향과 유별남, 뭐 그런 걸 염탐하고 탐구하는 재미라고나 할까?
아무튼 쉬운 말로 사람구경을 하는 것만큼 흥미롭고 기대되는 일도 없으니 우리는 먼 곳에 있는 다른 환경 속의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떠난다고 말한다면 너무 오버일까?
그건 다른 말로 얘기해서 의식의 밑바닥으로 깊숙이 내려가 찬찬히 우리의 행위의 배경을 이루는 것들을 들추어내본다면, 어쩜 우리들은 모두 고독하기 때문에 일부러 먼 길을 떠나는 여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고독을 치유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또 해 보게 된다.
전혀 자신의 일상과 동떨어진 곳을 일부러 찾아가 그곳에서의 고독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고, 그러므로 평소 자신이 느꼈던 고독을 희석시킬 수 있고, 그걸로 위로 받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고독을 즐기고 싶다는, 그러면서 동시에 그곳의 타인들이 나와 다르지 않음을 또 발견하면서 자신의 고독 역시 그들의 것처럼 그런 정도의 두께와 빛깔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그런 기대감이, 소망이 우리를 늘 타지로 이끄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낯선 곳에서의 모든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흥미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