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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02. 2022

지중해 크루즈 이야기 20

크루즈 여행 그 이후의 이야기 5

2022년 9월 7일(수)



다음날 아침 우린 피렌체(Florence)행 기차에 올랐다.

지중해 크루즈 여행 마지막 기항지였던 리보르노(Livorno)에서 가장 흔한 선택관광으로 피사와 피렌체 여정이 있지만 우린 과감히 선상에서 보냈다는 이야기를 이미 했었는데,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탈로(Italo)라는 이탤리 민영업체를 이용했는데 기차요금은 2인 왕복 59유로 60을 지불했다. 국영업체 트랜이탈리아(Trenitalia)와 비교해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는 평이 있는데, 우린 일찌감치(약 한 달 보름 전) 예약을 해서인지 생각보다 많이 저렴했다.


사실 97년 홀로 배낭여행 때 이미 나는 피렌체를 방문했었다.

하지만 그때는 심적,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많은 걸 놓쳤기에 늘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해서 이번 여행에선 미술관 관람을 좋아하는 남편과 꼭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아 그 아쉬움을 떨쳐내고 싶었다.

그리고 꽃이란 이름처럼 풍성한 예술적 감성이 화려함과 더불어 과히 독보적인 그곳에서 피날레를 장식하기로 맘먹었다.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우린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전율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득 찬 기대감 속에, 끝까지 침묵했지만 우린 서로에게 무언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마침내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Stazione di Santa Maria Novella)에 기차가 당도했다.


짐 하나 없이 홀가분한 복장과 차림으로 우린 구글맵을 따라 제일 먼저 예약(입장료는 1인 24유로)해 놓은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으로 향했다. 

가까이 있는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구경하고 갈까 잠시 고민했었지만 아무래도 예약시간보다 일찍 도착하는 게 나을 듯해 그대로 미술관 행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건 참으로 잘한 결정이기도 했고, 또 어찌 보면 아쉬운 결정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여정을 다 마치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방문했을 때 이미 문이 굳게 잠겨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땐 그걸 몰랐었고, 우린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 우피치 미술관에 도착하는 걸 목표로 했다.

이미 10시 반이 넘은 시간이었고, 그곳은 사람들로 벌써 상당히 북적였다. 그리고 자세한 안내가 없어 예약한 표를 찾기 위해 잠시 헤맨 후 그곳에 도착한 다음 난 남편에게 말했다.

"내가 입구에서 줄 서 있을 테니까 표 받아서 와요!"

불안한 표정을 짓는 남편을 뒤에 남긴 채 난 뛰다시피 입구로 가 줄을 섰다.

잠시 후 남편이 표를 갖고 왔고, 우린 얼마 후 입장할 수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제 방문했던 '보르게세 미술관'은 거기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마치 도떼기시장을 연상시키듯 사람들의 흐름이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였다.

거기에서부터 남편과 나는 불편한 마음이 되었다.

9월 초 정도면 휴가를 마친 사람들로 다소 여유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게 완전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고 시간을 잘 못 택했다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미 후회하긴 너무 늦어버렸는 걸!


우린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가 내려오기로 했다.

아래층보다 위층은 사람이 덜 붐빌 거라는 엄청난 착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순간 숨이 턱 막힐 만큼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수가 날 짓눌렀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품 '우르비노의 초상화'
보티첼리 작품 'La Primavera'
보티첼리 작품 'The Birth of Venus'


솔직히 감상이고 뭐고, 그저 사진 찍으면서 운집한 사람들을 뚫고 나가는 게 어느새 목표가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남편은 너무 피곤하다면서 벤치에 앉기를 반복했다.

미안한 맘 반(근데 왜 내가 미안해야 하지?), 안타까운 맘 반 그랬다.


티치아노 작품 'Venere di Urbino'


어찌어찌 구경을 마쳤는지, 구경을 하긴 한 건지, 도대체 기억나는 거라곤 사람들 머리에 가려진 작품들과 사람들의 땀냄새뿐이란 생각이 밀려들었다.

은근히 화가 났지만 아마 다른 사람들 생각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걸 위로 삼았다.

물론 이런 생각도 재확인했다.

'기독교를 빼고 어찌 유럽의 문화와 예술을 말하리오!'

그리고 우린 터덜터덜 걸어 드디어 그 유명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일명 두오모 Basilica di Santa Maria del Fiore)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미 오후에 예약이 되어 있었고, 그밖에 다른 곳을 입장하기에 우린 너무 지쳐있었다. 해서 우린 밥부터 먹기로 하고, 근처 식당을 검색하던 중 남편이 피렌체에 오면 먹어봐야 한다는 티본스테이크 집 중 평이 괜찮은 곳을 하나 선택했다.

곧장 그곳으로 향한 우리는 테이블을 잡고 앉아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천천히 메뉴를 둘러보고 스테이크와 약간의 사이드디쉬, 음료를 주문했다(이곳의 스테이크는 일정 분량으로 주문해야 하는데 킬로가 조금 넘었고 스테이크 가격만 66 유로 해서 토털 85유로 50으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비싼 식대였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 먼저 고기의 양과 질을 보여주면서 만족하느냐고 물었다
피렌체가 스테이크의 명소로 거듭나게 된 그 기원에 관한 소개까지!
지금 봐도 입에 침이 고인다는...
우리가 식사했던 바로 그 식당 모습.


우피치 미술관에서 거의 혼이 나갔음에도 그 와중에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빛이 참 예쁘다고 느꼈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기대대로 스테이크의 퀄리티나 풍미가 아주 훌륭하다는 것, 또한 우리 부부는 맛난 것만 먹으면 지나간 불상사를 곧 잊어버린다는 점을 깨달았던 거 같다.


식사를 마치고 피렌체 거리의 화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구경하면서, 또 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면서 우린 먼저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의 그 유명한 '천국의 문'을 찾았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 문은 두오모 건축을 두고 끝까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와 경합을 벌였던 기베르티(Lorenzo Ghiberti)의 작품으로 구약성서 이야기를 10개로 나눠 채운 것이다.

화려한 금빛으로 섬세하게 하나하나 스토리를 채운 작품이 볼만한데, 기베르티가 자신의 모습을 살짝 그 안에 숨긴 것도 꽤나 재미있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청동문은 진품이 아니고, 진품은 후에 우리가 방문했던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재미난 사실이 아닐는지.



두오모 입장은 오후 3시였다. 해서 우리는 사람들 따라 줄을 섰고, 마침내 3시가 가까워오자 두오모 돔 입장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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