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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노마드 Oct 03. 2022

지중해 크루즈 이야기 21

크루즈 여행 그 이후의 이야기 6


우리는 이미 두오모 통합권을 구매해놓았었다. 통합권이란 피렌체를 대표하는 성당, 즉 두오모의 쿠폴라+세례당+종탑+두오모 지하 유적지+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모두를 입장할 수 있는 것으로 요금은 1인당 30유로였다.

그중 맨 먼저 두오모 쿠폴라를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 입장하게 된 것이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돔이 더 가까이 보이고, 아래층에서 움직이는 신자 혹은 관광객들의 모습이 마치 개미처럼 보인다. 신기하기도 하고, 어딘가 장엄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 기분은 빼곡한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졸지에 고행하는 영성자의 고뇌로 바뀌는 걸 경험하게 된다.


오르고 또 올라 드디어 쿠폴라 꼭대기에 도착하면 먼저 해냈다!라는 성취감을 느끼게 되고, 곧이어 저 아래 펼쳐지는 풍경에 감동하게 된다. 

탁 트인 사위에서 하늘과 가까워진 느낌은 특별히 두오모라 더한 듯했다. 실은 피렌체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소설과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라 더한 건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많은 이들의 카메라를 피해,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남편과 나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남들보단 좀 더 일찍 내려왔다. 올라갈 땐 많이 힘든 여정이 내려올 땐 순식간이라는 사실은 늘 나를 놀라게 한다.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마음 다른 것과도 그리 큰 차이는 아닌 듯싶기도 하고 말이다.



열심히 두오모 쿠폴라에 올랐던 스스로에게 상을 주기 위해 우린 젤라또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우연히 발길 따라 들른 곳인데, 역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걸 보면 나름 이름을 날리는 곳이 분명해 보였다.

기대한 대로 맛도 좋았고, 덩달아 기분까지 아주 좋아졌다(후에 알아보니 역시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는).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두오모 지하 유적지였는데, 남편은 피곤하다면서 성당 의자에 앉아있겠다고 했다.

해서 나만 아래로 내려가 짧게 구경을 마치고 올라왔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 자신이 만든 두오모 쿠폴라를 바라보고 있는 브루넬레스키 조각상을 발견했다.

과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만든 저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지! 아무렴!' 뭐 대충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1437년에 완성되었으니 장장 585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 그걸 만든 사람뿐 아니라 지키고, 계속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한 마디로 역사의 힘! 하지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그런 역사가 가능하도록 만든 사람들, 즉 예술이 꽃피울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후원을 자처했던 이들이 있으므로 멀리 사는 우리 같은 사람도 오늘날 감상이란 혜택을 얻게 된 것일 터다.


하지만 곧 이런 내 감성을 깨우는 게 있었으니 바로 수많은 관광객이란 실체가 바로 그것이었다.

우피치 미술관에 이어 점점 많아지는 관광객들로 난 냉큼 현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까 봤던 광경이 떠올랐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두오모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시간이 넉넉하니 먼저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Opera di Santa Maria del Fiore)을 들를까 했었는데 거기 줄이 장난 아니게 길었던 게 기억난 거다.

이제 늦은 오후가 됐으니 줄이 좀 줄지 않았을까를 기대하며 우린 그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예상대로 줄어든 관람객 수를 확인하고 냉큼 입장했다.

그곳에서 처음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천국의 문' 진품이었다. 그런데 언뜻 보기엔 가품이나 진품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고, 가까이서 봐도 도무지 알아채릴 수가 없으니 이런 걸 두고 '맹목'이라고 하는 거겠지? 란 생각에 미쳤다.

거긴 진품 집결지라고 하는데, 우리 같은 사람에겐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그 후로도 우린 계속 전진했다. 이곳에서 전시되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그리고 도나텔로의 '마리아 막달레나'를 도저히 빼놓을 수 없었기에.


원래 로마 산 피에트로 성당에 있어야 하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왜 여기 있었던 건진 알지 못한다는.ㅠ.ㅠ
이것이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미켈란젤로 오리지널 '피에타'다.
도나텔로의 '마리아 막달레나'


특정 작품을 제외하고 이곳은 상대적으로 관람객 수가 적어 작품을 감상하기에 심적인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는 장점이 뚜렷한 곳이었다.

좀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관람한 후 마지막 코스는 '기념품점'으로 연결되곤 하는데, 작품에서 받은 감명과 감동을 비슷한 물품을 구입하므로 대리 만족할 수 있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남편과 나는 웬만하면 기념품점을 그냥 지나치곤 한다. 왠지 모르게 작품에서 받은 감동이 반감될 거 같단 우려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두오모 통합권으로 방문할 수 있는 마지막 두 곳 중 조토의 '종탑'

(Campanile di Giotto)이었다.

두오모 쿠폴라를 감상하기 위해 최적의 장소로 알려진 이곳 역시 무수한 계단이 관광객들의 의욕에 불을 지르거나 사그라지게 하는데, 그중 나는 전자였지만 남편은 후자라는 게 잠시 후 드러났다.

열심히 계단을 오르던 중 중간쯤 남편은 자긴 그냥 쉬겠다며 나보고 다녀오란다.

어제까진 괜찮았는데 왠지 오늘 우피치 미술관에서부터 남편의 기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고! 다를 맘속으로 외치며 홀로 계단을 올랐고, 드디어 종탑의 끝에 다다렀다.

말대로 두오모의 쿠폴라가 한눈에 들어왔다. 또한 두오모 쿠폴라와 높이가 비슷해서인지 아래 전경이 시원하게 보였다. 비록 사방천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긴 했지만 말이다.


조토의 종탑이라 종이 있었던 거겠지? 지금에서야 생각이 났다!


그곳에서 내려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미처 내부를 방문하지 못했던 산 조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

돔의 프레스코화가 특별히 멋졌던 그곳은 기베르티라는 이름과 천국의 문, 그리고 프레스코화로 기억될 듯하다. 

돌아와 찾아보니 그 멋진 프레스코화는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해 구약, 신약 성서 이야기와 예수는 물론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의 생애까지 모자이크로 표현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

꼼꼼히 살펴보지 못한 아쉬운 마음과 함께 아는 만큼 보인다고 명소를 방문할 때는 여유롭게 시간을 안배하는 건 물론 미리 공부해 가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됐다.



사실 로마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밤 8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많다 보니(남편이 너무 피곤해 보여 강행하자고 강요할 수가 없었다!) 우린 아침에 놓쳤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구경을 마지막으로 일찍 로마로 향하려고 했다.

헌데 그마저 여의치 않아(이미 문을 닫았었다고 지난번 말했었다.) 우린 기차역으로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시간보다 일찍 로마로 돌아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예약 상태를 점검하던 관계자가 가능은 한데 1인당 9유로를 더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우린 그 자리에서 티켓을 변경했고, 결과적으로 로마-피렌체 기차요금은 2인 77유로 60이 되었다.


피렌체를 자주 방문할 순 없으니 이왕 방문한 김에 여기저기 많은 곳을 눈에, 가슴에 담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컨디션이 급 하강해 여의치 않았기에 이걸 핑계 삼아 다시 한번 피렌체 방문을 맘속으로 다짐했다.

나는 가봤지만 남편은 그 유명한 베키오 다리조차 밟아보지 못했고, 전망 좋은 미켈란젤로 광장도, 피렌체를 빛낸 300여 명의 명사가 잠들어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도 가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로마로 돌아오는 길은 피곤에 젖은 우리의 심신과 달리 멋진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석양을 바라보면서 우린 각자 생각에 빠져들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날은 분명 우리 둘에게 특별한 날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로마를 벗어난 타 도시에서 가장 바빴던 하루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최고의 스테이크와 젤라또를 맛봤던 매우 운 좋은 날로 기억될 것이 분명했다.


그날은 또 메디치 가문 소유였다가 리카르디 가문으로 넘어간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도 문을 닫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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