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귀농이야기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무든 꽃이든 사람들은 그들과 무언가를 교감하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위안을 느끼기에 그들을 가까이 두고 싶고 환장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율마를 좋아하는 것은 그가 한 그루의 나무같아서다.
키작은 율마든, 키가 큰 율마든 그에게서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본다.
그래서 율마라면 죽고 못산다.
율마를 큰 화분에 담긴 것을 두 개 샀었다.
나중에 멋진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리라는 야무진 꿈도 꾸면서..
한참을 신바람나게 바라보고, 물을 주고, 햇살을 쬐어주며 튼실히 자라줄 것을 기대했지만
뒤도 안돌아보고 목숨줄을 놓았다.
또 사고 또 가고...
그래도 이번에 두 개의 율마를 샀는데 이번에는 나도 머리를 좀 썼다.
아주 작은 율마를 샀다.
크게 손해보지 않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들이자마자 이쁜 화분에 옮겨주던 것을 하지 않고 사올 때의 플라스틱 화분째로 두었다.
이기적인 생각이 깔려 있었지만 이번 친구들도 바로 골로 갈까봐서...
나의 이런 속보이는 행동을 읽어서인지 그들 또한 푸르르던 잎이 바삭바삭 마르면서 또 좌판을 접었다.
평소에 거실에 서서 책 읽고, 글쓸 때 사용하기 위해 내가 만든 칸칸이 책상 제일 중앙에 턱하니 두고 모든 관심을 받았었는데 부질없었다.
그 이후로 난 율마를 집에 들이지 않았다.
내가 골로 보낸 율마 수만 보면 지금쯤은 율마에 대해 이골이 나야 하지만 아직도 그들이 뭐가 수틀려서 삶을 접었는지 조차 모르니....
다만, 사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면 화원 앞을 서성인다.
화원 주인의 손길을 많이 받아서인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율마를 보며 침만 흘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살았다.
그 날도 그러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아는체를 하여 돌아보니 성당에 다니는 지인이었다.
여기서 뭐하냐고...
여차여차해서 지금은 여기서 율마 눈팅을 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자기네 집에 큰 율마가 있는데 남편이 키큰 화초를 아주 싫어해서 안그래도 어쩌나 하고 있었단다.
이게 웬 일이랴.
이번 주 미사올 때 가져온단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율마를 내 차에 실어주며 잘 키우란다.
그때 왜그리 겁이 나던지.
지인은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이 생명을 키웠을까, 그런데 내가 소홀하거나 상식이 없어서 또 사단이 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덜컥 겁이 났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일이니 쓰러질까봐 조수석에 비스듬히 뉘어서 모셔왔다.
원래는 아래로 길쭉한 타원형이었는데 율마의 이런 수형을 좋아하기 때문에 과감히 전지가위를 휘둘렀다.
뚝뚝 잘려나온 율마가지가 데크에 떨어질 때마다 '공기가 잘 통해서 더 좋을거야'라는 위안을 옹알이했다.
그리고 체크무늬 천리본을 묶어주었다.
그리고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시켜주고 목 좋은 자리에 놓았다.
율마를 볼 때마다 거기서 난 바람소리를 듣는다.
전의를 상실한 날, 쓰다듬어 주면 그는 향기로 내게 말했다.
그의 말은 그레고리안 성가처럼 마음에 오랫동안 진동을 남겼다.
둘만의 이런 시간엔 강은교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나무가 말하였네>
-강은교-
나무가 말하였네
나의 이 껍질은 빗방울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햇빛이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구름이 앉게 하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안개의 휘젖는 팔에
어쩌다 닿기 위해서
나의 이 껍질은 당신이 기대게 하기 위해서
당신 옆 하늘의
푸르고 늘씬한 허리를 위해서.
한 해 끝에는 나의 소망대로 이 율마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할 생각이다.
작은 장식을 달고, 그 나무 꼭대기에 큰 별 하나 뜨기를 기다릴 거다.
그는 머리 꼭대기에 큰 별 하나 내다 걸기 위해 오늘도 푸르게, 푸르게 숨쉬고 있다.
당신은 어떤 마음의 나무를 키우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