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동분 소피아 Jan 30. 2018

산골의 겨울양식 그리고 봄

귀농아낙의 산골 밥상이야기

새소리가 점점 가까이서, 점점 크게 들리는 것으로 보아 봄이 멀지 않은 모양이다.

산중에서 봄이 가까이 왔음을 눈치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나뭇가지에 싹이 움튼다던지, 땅이 녹아 질퍽이기 시작했다던지, 바람의 싸한 기운이

점점 쇠퇴해졌다든지...

                                 (우리 유기농 밭에는 고추와 약성 좋은 쇠비름이 함께 자란다.)


그러나 산골 귀농 아낙은 또 다른 방법으로 봄이 내 언저리에서 알짱거리고 있음을 눈치챈다.     

냉동실 안에 넣어둔 이 청양고추의 남은 양으로 봄을 가늠한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아 겨울 끝 어디쯤이 있는 모양이다.


가을 맨 끝자락에 귀농아낙은 겨울양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그 중 하나가 겨우내 먹을 청양고추를 장만해두는 일이다.

초보농사꾼이 막걸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음식이 칼칼한 것을 선호한다.

   

우리집은 유기농으로 고추를 키우기 때문에 우리집 고추는 약을 친 고추보다 크기가 작다.

강렬한 태양 아래 고추를 따다보면 햇살을 받아 고추들이 얼마나 반질반질한지 모른다.

하나하나 수확하다 보면 봄부터 거름을 주고, 땅을 갈고, 두둑을 만들고, 심고, 비가 안와 애태우던 날들이 스쳐지나간다.

청양고추는 원래 작은데 그러다 보니 더더욱 작아 앙증맞기까지 하다.

다른 집보다 청양고추를 많이 준비해두는 편이다.

20년이 되어 가는 된장이 있어서 겨우내 된장찌개를 많이 먹기 때문에 필요하고, 각종

생선을 조릴 때에도, 각종 볶음탕에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겨울의 긴 터널 속에 있을 때, 음식에 청양고추를 넣어먹는 것은 어쩌면 겨울의 칙칙한 풍경과 혹독한 날씨 속에서 정신과 감각만은 살아있고자 하는 노력인지도 모를 일이다.

귀농 연식이 쌓여갈수록 긴긴 겨울 동안 스스로 어떻게 정서를 다르려야 하고, 오감이 무뎌지지 않도록

마음써야 하는지를 알아가는중이다.    

어쨌거나 겨울동안 먹을 청양고추양을 가늠하여 수확한 다음, 밭에서 함께 묻어온 고추이파리를 일일이 골라내고, 고추꼭지도 떼준다.

그런 다음 대충 씻는다.

제초제니, 비료니, 농약이니 이런 것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 인증 고추다 보니 대충 씻으면 됀다.  

  

물기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자른 다음, 소분해서 비닐에 담는다.

크지 않은 비닐 봉다리에 넣어 꺼내 먹기 좋게 한 다음 냉동실에 넣는다.   

  

겨우내 하나하나 곶감 빼먹듯 빼먹다 보면 어느새 겨울 끝에 와 있곤 한다.

이제 이 청양고추가 든 봉다리가 두 개도 안남은 것으로 보아 겨울이 끝자락에 와 있음을 감잡을 수 있다.   

  

당신은 겨울터널과 봄 사이 어디쯤에 와 있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