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근을 켜다
임신을 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본다는 베이비페어.
나도 마침 집 근처 코엑스에서 열려서 남편과 함께 가보기로 했다.
입구부터 열기는 뜨거웠다.
끝없이 늘어선 대기줄, 몰려드는 인파에 벌써부터 지쳐버렸다.
겨우 입장했지만 안은 더 혼잡했다.
발 디딜 틈 없는 통로, 시끌벅적한 부스마다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나는 그 틈에서 조금 주눅이 들었다.
처음 본 신생아 용품들. 작디작은 옷, 내가 몰랐던 신기한 물품들.
하지만 그중 가장 압도적인 건 입구를 꽉 채운 유모차와 카시트였다.
크고 웅장하게 전시된 모습은 마치 “곧 네 차례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편과 함께 상담을 받아봤다. 독일, 영국, 스위스... 대부분 유럽 브랜드들이었고, 가격은 천차만별.
특히 눈에 띄던 유모차는 200만 원이 넘었다.
직접 밀어보고 만져봤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었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그저 번쩍이는 외관만 좋아 보일 뿐이었다.
몇 개 제품만 설명을 들어도 한 시간이 훌쩍.
“이 모든 게 앞으로 다 필요하겠지...” 싶으니 설레기보다 먼저 머릿속에 통장 잔고가 스쳤다.
솔직히 말해, 나는 기쁘지 않았다.
수많은 용품들 속에서 “언젠가 사야 할 것들”만 눈에 들어왔고, 그 생각은 설렘이 아니라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왜 아직도 돈 걱정을 해야 할까.
왜 나는 늘 현실 앞에서 작아지는 걸까.
그 순간, 즐겁기보다는 비참했다.
더 둘러보면 분명히 사고 싶어질 텐데…
사지 못하는 내 현실이 싫어졌다. 그래서 서둘러 박람회장을 나왔다.
그래도 얻은 게 없진 않았다. 카시트나 유모차의 평균 가격대, 인기 있는 브랜드, 직접 체험해 본 감각들.
이런 정보들은 분명 도움이 될 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당근마켓을 열었다.
오늘 봤던 제품들을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많이 올라와 있었다. 심지어 무료 나눔까지 있었다.
“휴… 결국 난 당근인가.”
허탈하게 웃으며, 그래도 혹시 몰라 마음에 드는 제품들은 알림으로 저장해 두었다.
베이비페어를 다녀온 오늘.
나는 아이를 맡을 준비를 하러 간 게 아니라, 돈 걱정만 확인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언젠가 하나씩 준비해 가겠지.
설렘과 불안,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로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