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끝에서 처음으로 숨을 고른 날
드디어 기다리던 12주가 되었다.
그토록 멀게만 느껴졌던 숫자, 12.
임신 초기를 무사히 넘기고 ‘안정기’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시기였다.
12주 차에는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정밀 초음파와 니프티(NIPT) 검사가 진행되는 중요한 주차였다.
고령 임산부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니프티 검사는 필수가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부드럽게 권유했다.
“산모 나이가 조금 있으시니까, 기형 관련 검사는 한 번 해보시는 게 좋아요.”
그 한마디에 망설임 없이 동의했다.
예약해 둔 정밀 초음파는 정확한 시간에 시작되었다.
7분 남짓의 시간 동안, 내 손바닥보다 작은 생명이 화면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불과 12cm 남짓한 몸인데, 손과 발, 머리, 엉덩이까지 모두 자리 잡고 있었다.
경이로웠다.
입체 초음파 화면 속 아이는 작은 손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손을 머리에 얹고 있네요.”라고 설명했지만,
내 눈에는 마치 ‘경례’를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엄마, 아빠 잘 보고 있죠?’
그렇게 우리 부부를 향해 인사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 들은 말, “우리 귀염둥이 이제 좀 볼까요?”
진료실로 들어갔을 때, 선생님의 목소리 톤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몇 주간은 늘 차분하고 조심스러운 어투였는데, 이번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우리 귀염둥이 이제 좀 볼까요?”
그 한마디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중에 남편에게 들었는데,
선생님이 내가 들어가기 남편에게 “이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라고 말하셨다고 했다.
아마도 12주 이전에는 혹시 모를 상황들 때문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들인 것 같네요?”
초음파를 마치고 진료를 마무리할 무렵,
선생님이 조용히 말했다.
“아들인 것 같네요? 물론 열 명 중 두 명은 틀리지만요, 호호.”
순간 멈칫했다.
이렇게 성별을 바로 알려주신다고?
요즘은 젠더리빌(Gender Reveal) 파티니 뭐니 하며, 성별 공개 이벤트를 따로 하는 추세인데
우리 부부는 진료실 안에서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실망이나 놀람보다,
‘그래, 이 아이가 건강하길.’
그 생각만 들었다.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 작은 심장이 잘 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선생님은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주 잘 크고 있어요.”
라고 말해주었다.
그 한마디가 그동안의 불안한 마음을 녹였다.
매번 병원을 갈 때마다 ‘혹시 이번엔 아이가 없어졌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제야 숨을 편히 쉴 수 있었다.
남편은 늘 “괜찮아,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지만
이제야 그 말이 조금은 마음에 닿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두렵다.
2주 후에 나올 니프티 검사 결과, 그다음 달의 진료까지.
임신은 매 순간이 시험 같았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은 안도해도 될 것 같다.
폭풍전야 같았던 12주를 지나,
이제 진짜 ‘함께 가는 시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