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끼리 미용실』최민지 글, 그림
미용실 앞에 한 아이가 서 있습니다. 아이는 망설이다 큰 결심을 하고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단발머리로 잘라주세요."
아이의 변화를 싫어하는 부모님, 아이는 착한 어린이상을 받을 정도로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단발머리를 향한 갈망.
아이는 용기를 내서 변화를 시도하고 그 한 번의 변화로 아이와 아이의 가족은 평범한 가정에서 각자의 개성이 넘치는 가족이 되었습니다.
착한 아이 증후군(착한 아이 콤플렉스 , Good boy syndrome)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다른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내면의 욕구를 억누르고,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생각이나 정서를 감추는 아동의 심리상태를 말하는데요, 주로 엄격한 부모 밑에서 교육을 받을 때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주 양육자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심한 환경에서 생존하려는 방어기제의 일환으로 봅니다. '착한 아이 증후군'을 가진 아이는 부모가 정한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억압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위축된 태도를 나타냅니다. (참고: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이 지속되는 경우 자신의 내면은 무시한 채 외부의 기대에만 부응하다 보니 겉으로는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죠.
저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의 선택에 순응했고, 그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믿고 자랐지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제가 부모님께 배웠던 그 방식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시대는 달라지고, 아이들에게는 창의성과 개성을 요구하는데, 저는 남들이 볼 때 올바른 아이로 키워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이를 어릴 적부터 엄격하게 키우고 있었습니다.
성향적으로 예민하고 소심한 첫째는 9살이 된 지금도 행동하나 할 때마다 저에게 묻고 행동에 옮깁니다. 마음이 여린 둘째도 엄마의 단호함에 눈물부터 줄줄 흐르고 억울해하지요. 첫째에게는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른의 결정이 필요할 때 엄마의 허락을 받으면 된다고 했지만 그것 또한 가이드라인이 세워져 있지 않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막막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에서 제가 인상 깊었던 장면은 거울 앞에 앉아 용기를 내서 미용실에 들어왔지만 두려움이 가득한 아이의 표정입니다. 항상 부모님의 말을 잘 듣던 아이에게 그것을 거역하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아이의 집은 언니도 아이도 같은 머리를 하고 개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평범함을 추구하는 가정으로 무채색으로 표현되었는데요. 아이가 머리를 다하고 환한 표정으로 나갈 때 아이에게 개성을 뜻하는 변화된 한가닥의 머리카락과 "맘대로 해"라고 바뀐 입간판 글자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아이가 개성 넘치고 창의적으로 자라기를 바랐으나, 정작 나는 그렇게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착한 딸, 착한 며느리, 착한 아내로 살기 위해 저의 내면의 소리를 무시하고 살았던 제가 마흔 앓이를 통해 '내 마음대로' 나의 길을 가려하는 저에게도 용기를 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작가가 쓴 『문어 목욕탕』도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두 권이 비슷한 느낌의 책인데요, 각자 결핍이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입니다. 코끼리 목욕탕의 아이가 엄격한 가정에서 개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라면, 문어 목욕탕에는 한부모가정의 자녀로 엄마가 없어서 여탕에 혼자 가는 것이 두려운 아이입니다. 주인공들을 코끼리와 문어가 나름의 방법으로 아이에게 힐링과 위로를 주고 있지요. 첫 장면에서 뒷모습의 쓸쓸하고 두려운 모습만 보이다가 마지막 장에서는 누구보다 해맑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 저도 함께 미소를 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