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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Dec 23. 2020

내 마음속 5살 준이를 떠올리며

『마음을 지켜라! 뿅가맨』- 윤지회 글, 그림

책 표지(좌)와 주인공 준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뿅가맨(우)

"뿅가맨? 

다섯 평생 이렇게 멋진 로봇은 처음이에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아이들 선물 준비로 마음이 분주하다.


매년 산타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아이가 무엇을 갖고 싶은지 미리 탐색하고,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사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한다. 준비한 선물이 도착하면 아이가 찾지 못하도록 꽁꽁 숨겨두었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아이가 잠에 들면 머리맡에 조용히 두면 성공!

이 인증샷 하나 때문에 아이들은 아직도 아빠가 산타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다음날 아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선물을 뜯어보며 올해도 산타할아버지 선물을 받았다고 기뻐한다.


가끔 아이들이 선물을 먼저 찾아내거나 중간에 받고 싶은 선물이 바뀔 때처럼 난감한 경우도 있다. 그럴 때면 산타가 바빠서 먼저 택배 아저씨 시켜 보냈다고도 하고, 산타할아버지가 멀리서부터 선물 싣고 오느라 못 바꾼다고 말하는 등 엄마는 거짓말쟁이가 된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울면 안 되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울다가 울음도 그치고 선물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을 보면 귀엽기도 한데, 올해는 남편이 산타할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버렸다. 아이들은 반신반의하며 산타 선물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다. 


첫째가 5살 때 헬로카봇과 터닝 메카드가 유행이었다. 헬로카봇은 로봇들이 5단 합체, 7단 합체를 거듭하며 나날이 몸값이 비싸졌고, 엄마들은 크리스마스니까 아이들에게 크게 한번 쓴다는 심정으로 얇아지는 지갑을 무시하며 사다 주었다. 심지어 터닝 메카드는 다양한 종류의 메카드들이 나왔는데, 일부 캐릭터는 너무 구하기 힘들어 그 캐릭터가 풀리는 날이면 장난감 마트에 줄로 늘어서서 기다렸다가 겨우 사기도 했다. 그런 엄마의 노력을 아이는 몰라주고 받으면 그때만 신나 할 뿐 금세 관심에서 멀어져 나중에는 어디다 둔지도 모를 때도 있었다. 


뿅가맨 속 주인공 준이는 엄마를 따라 마트에 갔다가 뿅가맨을 만난다. 5살 평생 이렇게 멋진 로봇은 처음이라는 준이. 준이의 마음속에는 뿅가맨뿐이다. 뿅가맨 앓이를 하던 준이는 체험학습에 다녀온 날 엄마로부터 선물을 받고 하늘을 날아오를 것처럼 기뻐한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 손에 들려있는 건 새로 나온 신상 로봇 왔다맨, 준이는 또다시 5살 인생에 가장 멋진 로봇을 보게 된다.


9살 첫째가 뿅가맨을 읽고  옛날 생각난다며 격한 공감을 하는 걸 보니 이 아이도 이제 좀 컸나 보다. 지금은 로봇보다는 게임이나 마인크래프트 레고 등 고가의 선물을 바라다보니 엄마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그래서 아이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해서 적당한 금액의 선물을 고르라고 할 생각이다.


선물은 추억을 타고 마음속 준이를 만났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나에게 작은 선물을 어떤 걸로 할까 고민을 하다 만년필을 골랐다. 내 것만 사기 아쉬워 남편에게도 똑같은 만년필에 각인까지 넣어 선물로 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마누라의 선물에 남편은 놀라면서도 싫지는 않은 눈치다. 알고 보니 예전에 사서 쓰던 만년필과 같은 제품이었는데 그때 실수로 망가뜨려 버리고 나서는 다시 사고 싶었는데 망설이고 있었던 제품이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나를 위한 선물을 한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그저 매일 한잔씩 사 먹는 1500원짜리 커피가 나를 위한 선물이라고 했지만, 사실 내 마음속에도 갖고 싶은 것은 항상 있었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은 더 했을터, 그래서 나는 남편이 종종 어떤 걸 갖고 싶어 하면 망설이지 말라고 사라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데 본인을 위해 그 정도 선물은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남편은 돈 생각에 망설이느라 시기를 놓칠 때가 대부분이다.


남편에게도 5살 준이처럼 갖고 싶은 로봇이 있었다고 한다.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 생이면 누구나 알듯한 볼트론(고라이온). 5마리의 사자? 동물? 암튼 5마리가 합체해서 멋진 로봇으로 변신하는 것이었는데 그 또래 남자아이들 집에는 하나씩 있었을 정도로 인기 로봇이었다. 물론 우리 집에도 남동생이 사자 로봇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시부모님은 장난감을 잘 안 사주셨는데, 그래서 남편은 사자 한 마리라도 갖고 싶어서 애를 태웠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도 볼트론을 갖고 싶어 한 번씩 인터넷을 뒤적거릴 때가 있다. 지금은 레고 볼트론으로는 살 수 있지만 아이들 손을 탈까 봐 사지 못하고 , 망가지지 않는 고 라이언 초합금 피겨는 일본에 가야 구할 수 있다 보니 아직도 신랑의 마음속 5살 준이에게는 볼트론이 잊히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미미를 좋아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미미를 딱 1개만 사주셨다. 다른 친구들은 미미 집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심지어 남자 친구도 있는데, 나는 맨날 같은 옷으로만 놀아야 하니 속상했다. 피아노 학원 옆에 문구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구점은 유리창 가득 장난감을 전시해 아이들이 밖에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그 유리 앞에는 벤치가 있어서 나는 매일 피아노 학원 가는 길에 한참을 앉아 내가 갖고 싶은 미미인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번은 너무 갖고 싶어 유리를 깨서 가지고 갈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던 것 같다. 물론 생각만 한 것이지만 그만큼 미미인형을 갖고 싶어 했다.


언제까지 인형을 가지고 놀았는지는 기억에 나질 앉는다. 나도 여느 아이들처럼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장난감 가게에 놓여있는 인형들을 보면 문득문득 그때 사지 못한 미미인형이 떠오른다. 그렇게 내 안에 5살 준이는 갖지 못한 뿅가맨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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