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집 준범이』- 이혜란 글, 그림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돌보고 가르치는 일은 한 가정만의 책임이 아니며, 이웃을 비롯한 지역사회 또한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인천문화통신3.0 - 2017.9.6 기사 발췌)
뒷집에 새로 이사 온 준범이는 온종일 혼자 있는다. 창 너머로 보이는 앞집 아이들을 쳐다만 볼 뿐 먼저 말을 걸지도 못한다. 그런 준범이에게 앞집 아이들이 먼저 찾아왔다. 또래 친구들과 한바탕 신나게 논 준범이는 이제 함께 노는 것의 행복함을 알게 되었을까?
책을 덮으며 <응답하라 1988>이 떠올랐다. 쌍문동의 한 골목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드라마다. 지금은 보기 힘든 옛 골목의 추억, 한 골목이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고, 집마다 수저가 몇 벌인지 그릇이 몇 개인지 알정도로 함께 어울리며 지내던 시절이다. 그렇게 골목 안에서 엄마들은 내 아이 남의 아이 가리지 않고 함께 보듬고 키웠으며 아이들도 함께 자랐다.
나에게도 비슷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있다. 나는 어렸을 때 한 빌라에 살았다.
두 개의 건물이 'ㄱ'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고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3층짜리 빌라였다.
지리적 특성상 가로라인의 동은 언덕 위에 있고, 내가 사는 동은 세로라인이었는데 층마다 2가구씩 총 6가구가 살았다. 어렴풋한 기억에는 지하에도 단칸방에 세를 주어 사람들이 살았던 것 같다. 그 6가구의 관계가 너무 돈독해서 지금 나의 기억으로는 드라마 속 쌍문동 골목이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주말이면 아빠들은 202호에 모여 고스톱을 치고, 엄마들은 101호에 모여 음식을 하고, 우리들은 빌라 앞 놀이터에 모여 놀았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시간을 보냈고 우리 집이 제일 막내였는데 덕분에 나는 다른 집에 놀라가도 귀여움 듬뿍 받으며 언니 오빠들하고 어울려 놀았다. 1층 언니들이 가수 소방차를 좋아해서 거울보고 춤추면 나도 따라 추었고, 오빠들이 '천녀유혼'이라는 영화를 빌려왔을 때 무슨 영화인지도 모르고 함께 보다가 무서워서 엉엉 울기도 했다. 동생을 잃어버렸을 때는 모든 집이 함께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찾아다녔고, 부모님이 급하게 시골에 다녀오셔야 할 때는 나를 돌봐주기도 하셨다. 빌라 주차장 한 곳에 모래놀이터가 있어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가 창을 열고 '밥 먹어'라고 외치면 후다닥 뛰어들어갔다. 서로의 경조사를 챙겼으며, 각자 이사를 해서 그 빌라를 떠나기 전까지 모두 의지하고 정을 나누며 지냈던 곳이었다. 지금도 그 빌라를 떠올리면 엄마가 막 청소를 마친 상쾌한 공기 냄새, 빨래 삶는 냄새, 밝고 따뜻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리 집도 사정에 의해 이사를 하게 됐고, 이후에는 그때처럼 이웃과 교류하는 일이 드물었다. 엄마도 아빠랑 같이 일을 하셨으니 더 했던 것 같다. 그때를 생각하면 어둡고 그늘진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에게 그 빌라가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른 지금, 아이들의 골목문화는 사라졌다. 지금은 조리원 동기, 아이 유치원 친구 엄마로 이어지는 엄마들과의 모임을 통해 친목을 쌓지 않으면 아이들도 함께 키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아이들에게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과 관계 속에 배우는 사회성을 생각할 때 엄마들끼리 돈독한 모임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한번 생긴 무리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부는 유치원 때 형성된 그룹이 학교 가서도 영향을 미쳐 아이의 학습에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학원을 다녀와서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에게 친구와 어울리는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아쉬움이 느껴진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던 말이 생각난다.
"00 어머니, 혹시 다른 어머니들하고 어울리세요?"
순간 울컥했다, 그때 당시 내가 어울리던 사람은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아이 엄마 한 명뿐이었다. 아이의 성향 자체가 예민하기도 했지만 내가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아이가 사회성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싶었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라고 했는데, 사람이 찾지 않는 우리 집에는 늘 혼자 컸던 우리 부부의 영향이 그대로 아이에게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산후 우울증의 영향도 있었고 두 살 터울의 동생을 돌보느라 정신도 없었지만 그 이후로 나도 좀 더 밝아지려고 노력했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했었다.
유치원에 가서야 나도 어울리는 엄마들 모임이 생겼고, 아이도 꾸준히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생기다 보니 점점 성격도 밝아지고 누구보다 활달하게 생활을 했다. 사람이 관계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어른도 아이도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때 누구보다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