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서로 다른 출세 속에서도 이어진 우정
오성이 재치와 인간미로 선조의 신임을 받았다면 한음은 실력으로 관료 사회에서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한음은 30대 초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대사헌에 임명되어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출세를 했습니다. 정승이 되는 길도 남들보다 앞서 갔지요.
실제로 한음은 선조 17년 서충대에서 치러진 시험에서 당당히 1등을 차지하며 장원급제했습니다. 나이가 어렸지만 뛰어난 지력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관료 사회에 참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대제학 물망에도 올랐는데 이는 당대 문형에게 크게 인정받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젊음과 신임 부족으로 재주에 걸맞은 자리를 조금 늦게 받기도 했고 나이가 더 드신 고관이 그의 재능을 숙성되기를 기다리며 평점을 낮게 주는 일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오성과 한음은 성격과 출세 속도는 달랐지만 함께 공부하며 동료로서 우정을 이어갔습니다. 1583년 두 사람은 집에서 머물며 공부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 기간을 함께 보냈는데 당시 사가독서는 공식적으로 직무에서 잠시 벗어나 학문에 전념하도록 허락받은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두 사람은 유교 고전과 역사서를 정독하며 서로 의견을 나누고 교류했죠. 이런 시간이 두 사람의 깊은 학문적 이해와 친밀감을 키운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사가독서 제도는 당시 관리들이 단순히 행정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식인으로서 갖춰야 할 교양과 덕망을 중시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한음과 오성 같은 젊은 신진관료들에게는 주어진 공부 시간과 환경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선 우정뿐 아니라 때로는 긴장도 있었습니다. 특히 한음은 성격이 다소 까다로웠고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면 불평과 불만을 자주 털어놓았습니다. 오성은 그런 한음을 잘 이해하며 때로는 조언하고 위로하면서도 끝내는 한음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남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친구이자 선배로서 한음의 재능과 열정을 인정하면서도 때때로 그의 불평에 맞서 현실적인 조언을 주기도 한 오성의 역할도 눈에 띕니다. 이렇게 서로의 다른 성격과 장점을 인정하면서 우정은 더욱 단단해졌습니다.
논어에는 “子曰 君子和而不同(자왈 군자화이부동)”이라 해서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완전히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오성과 한음은 서로 출세 속도나 성격은 달랐지만 조화를 이루며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서로 다른 개성과 재능이 어우러지며 우정이 더욱 빛났습니다.
또한 “子曰 知者樂水 仁者樂山(자왈 지자락수 인자락산)”이라는 구절처럼 지혜로운 자는 물을 즐기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했습니다. 한음은 변덕 없는 물처럼 유연하고 민첩하게 출세길을 걸었고 오성은 든든한 산처럼 변함없이 한음을 지지하며 우정을 지켰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이렇게 서로 다른 특징이 어우러져 조선 사회를 함께 이끌어간 소중한 동반자 관계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