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통해 보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 11

11. 외교에 빛난 한음과 고난 속의 오성

by sophia p

한음은 학문뿐 아니라 외교 능력에서도 빼어난 인재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일본과 중국의 사신을 만나 외교 현장에 종사하며 조선의 얼굴로 활약했죠. 정해왜변(丁亥倭變)을 해결하는 데 대표적인 역할을 했고 임진왜란 전 조선의 어려운 외교 상황 속에서도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조율자로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 온 사신들과 교류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고 여러 관료와 지식인 사이에서도 신망이 두터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명성은 국내 정치에서 오해와 갈등을 불렀고 오성과는 반대로 한음은 ‘성실한 출세 코스’를 밟으며 때론 까다로운 성격으로서도 주변의 견제를 받았습니다.


한편 오성은 기축옥사라는 대형 정치 사건의 희생양이자 기록자로서 심문과 고난 속에 있었습니다. 그는 녹여야 할 사건들을 꼼꼼히 기록하며 국가적 혼란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으나 역모의 혐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성은 자신의 재치와 진실성으로 많은 이들의 신뢰를 얻었고 선조마저 그의 재능을 인정해 특별히 지명하여 일을 맡겼습니다.


이와 같이 한음과 오성은 각각의 위치에서 시대의 파고를 헤쳐 나갔습니다. 논어에는 “子曰 君子求諸己(자왈 군자구저기)” 즉 ‘군자는 자신의 잘못을 구한다’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부단히 노력하며 조선 사회의 바로미터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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