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국란과 가족, 이별의 무게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국난 앞에서 오성과 한음의 끈끈한 우정만큼이나 깊었던 것은 가족과의 이별의 아픔이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이들은 정작 가장 가까운 이들과는 점점 멀어져야 했습니다.
오성은 권율이 감옥에 갇히고 임진왜란이 터지기 직전까지 가족들과 멀어졌습니다. 권율은 감옥에서 풀려난 직후에도 가족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어주지 않고 궁궐로 향했습니다. 떠나야 하는 마음속 깊은 갈등과 괴로움을 감출 수 없었지만 나라를 먼저 생각한 결정이었습니다. 권율장군은 어린 조카가 울며 붙잡아도 그것을 끊어내려 허리띠를 자를 만큼 극심한 심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가족인 오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은 점차 죽음과 이별을 맞았습니다. 임신 중이던 조카는 세상을 떠났고 어린 딸은 영양과 치료 부족으로 병들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딸이 마지막 힘으로 “아빠가 보고 싶어”라던 말은 오성의 가슴에 깊은 슬픔으로 새겨졌고 평생 잊지 못할 아픔이 되었습니다.
국난 속 부모와 자식의 이별이 얼마나 무거운지 오성의 마음은 남몰래 찢겨 나갔습니다. 그리고 “子曰 親親(자왈 친친)” 즉 ‘어린 시절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을 돈독히 하라’는 논어의 가르침은 오성에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책임감 그리고 나라를 위한 희생 사이에서의 내적 갈등을 더욱 깊게 느끼게 했습니다.
나라와 가족 사이에서 치러야 했던 고통은 조선 시대 지식인과 선비가 공유한 시대적 숙명이자 인간적인 고뇌였습니다. 오성의 이야기는 그 당시 많은 이들의 삶을 대변하며 우리에게도 큰 울림과 성찰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