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전란 속 가족의 비극과 한음의 고뇌
임진왜란의 격변 속 한음의 처 이 씨 부인은 시부모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깊은 산골에 숨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은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무겁게 했을 것입니다. 어느 날 도적들이 안협을 습격해 가족이 흩어지면서 그 절박하고 무서운 순간의 심정은 말로 다할 수 없었겠죠. 부인은 세 살 된 아들을 품에 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이를 보호자에게 맡기며 “우리 아이를 잘 지키고 내 뜻을 잊지 말라”라고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마지막 몸부림으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 순간 마주한 불가항력적인 고통과 절망, 두려움은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슬픔의 토로였을 겁니다.
이 씨 부인의 이런 비극은 가족을 지키려는 사랑과 동시에 눈앞의 현실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강렬히 드러냅니다. 전란은 단지 전쟁터만이 아니라 가족과 일상의 평화, 인간관계 그 자체를 무너뜨린 참혹한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이 안타까운 소식은 멀리 명나라에서 귀국한 한음에게도 전해졌습니다. 한음은 사직을 올려 직접 가족을 돌보고 싶다는 간절한 뜻을 밝혔으나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선조는 “나라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의 뜻을 막았습니다. 그 간절한 마음과 고뇌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한음이 자신의 임무를 다했던 것은 명확한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전란은 개인의 삶에 깊은 상처와 상실을 남겼지만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시대와 사람에 대한 깊은 성찰을 자아냅니다.
논어에 “仁者愛人(인자애인)”이라 하였습니다. 인자한 자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인데 이 구절은 이 씨 부인과 한음의 삶에 진한 울림을 줍니다. 한 개인이 가족과 타인을 향한 사랑을 지니고 있기에 비극 속에서도 존엄과 의지를 잃지 않았으며 바로 이 사랑이 그들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