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계속되는 전쟁과 한음의 내적 갈등
임진왜란의 광풍 속 조선은 연일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왜군은 파죽지세로 북상했고 급기야 임금마저 평양까지 밀려났습니다. 피란 행렬은 지치고 절망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그 절박한 국면에서 한음은 강 건너편 나무 끝에 종이가 매달려 있는 기묘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적진으로부터 온 알 수 없는 징표였습니다. 조선 군사가 강을 건너려던 순간 한음은 그 의문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깊은 고민이 파도처럼 일기 시작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왜군은 명나라를 치려 할 뿐 조선을 직접 겨냥한 것이 아니며 평화로운 길을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 대신들 사이에서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적국의 달콤한 제안을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잔혹한 적병들을 끝까지 섬멸해야 할지 의견은 첨예하게 대립했습니다. 한음은 왜군의 진심을 온전히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작정 싸우는 것 또한 이미 소용없다는 비관적인 생각마저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성은 그러한 한음의 복잡한 심경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한음을 다독이며 강경책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가했습니다. “겨우 둘 죽여 봐야 적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전쟁의 허무함뿐 아니라 이미 조선 내부 깊숙이 파고든 당파 싸움과 혼란이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그의 말속에는 전란이라는 비극 속에서 지도자가 마주해야 할 냉혹한 현실 인식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침내 임진강 한복판에서 조선과 왜군의 첫 대면이 이루어졌습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강물 위에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왜군 군대의 기세는 등등했고 조선 시종들마저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음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굳건한 자세로 배 위에 당당히 올라탔습니다. 적국의 지휘관과 직접 마주하며 흐트러짐 없는 냉철함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흔들리는 나라의 근간을 지탱하려는 지도자의 비장한 결의였습니다.
왜군 지휘관은 다시 한번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명나라에 길을 빌리려 했을 뿐 조선을 치려던 것이 아닙니다 부디 길만 허락해 달라”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기만적인 겉치레에 불과했고 한음은 이러한 외교적 수사 속에서 적국의 깊은 의도를 꿰뚫었습니다. 그는 임전태세를 다잡았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끝없이 깊어지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드리워 있었습니다.
논어에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인아무신 부지기가야)"라 했습니다. 즉 "사람으로서 믿음이 없다면 그를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뜻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주는 행동이 우선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왜군과의 기만적인 소통 속에서 한음은 상대의 진실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전쟁의 본질과 인간의 본성을 깊이 통찰해야만 했습니다. 그의 고민은 비단 전술적 판단뿐만 아니라 도덕적 신념까지 아우르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