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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27. 2024

내 안의 세계

여성성과 남성성을 구분하는 것은 요즘엔 모호한 일이기도 하고 큰 의미를 두지 않기도 하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양성성을 모두 갖추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융'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아니무스는 청소년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나의 에고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며, 자기표현에 서툰 아니, 하지 않는 전형적인 내성적 인간의 표본이었다. 그랬던 내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내면의 아니무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여자친구보다 남자 사람 친구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고, 동성친구들에게 나 같은 남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백 아닌 고백도 많이 듣게 되었으며,  책임감 강하고,  강단 있고 패기 넘치는 의욕들이 웬만한 남자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여성스러운 제스처나 말투는 스스로 가증스럽다 생각이 들었고, 그럴수록 더욱 나의 감정표현은 단조롭고 간결하며 더욱 강렬한 자유의지를 표현하게 되었다. 


내가 유독 이렇게 나의 아니마를 부정한 이유는 상처받은 나를 쳐다보기 싫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의 내면에 한없이 여리고 예민한 모습들로 인해, 의도치 않은 상처와 가스라이팅의 흔적을 지울 수 없었던 것들을 나의 탓으로 돌렸기에 나의 아니마는 무능력한 것이라고, 필요 없는 것이라고 강력하게 거부한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쓸모없이 여기던, 불편했던 여성성이 사실은 누구보다도 깊게 나의 심연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숨기고 싶은 곳을 건드리는 모든 것들을 배척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의기양양했던 나의 아니무스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해결사가 아닌가 보다. 가슴 아프고 나약한 그녀가 내미는 따뜻한 손길을 그리워하는 소박한 어른의 모습으로 그녀의 품 안에 기꺼이 안길 준비가 되어있다. 내 안에서 더 이상  각자의 방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존하는, 영역의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에고와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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