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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윤 Aug 28. 2024

달리기를 흠모하다

억울한 일이 생겼다. 아무리 먹어도 뱃살만큼은 안 찌던 내가, 이제는 먹지 않아도 출렁이는 뱃살을 얻게 된다. 물론 그동안 좀 방심하긴 했다. 머리가 복잡하면 술로 이완시키는 쾌감을 꽤 오랫동안 즐겼다. 뇌세포가 하는 일을 알코올 따위가 대신할 리 없다. 하지만 잠시 망각하고 싶은 내 기분에 의해 술을 찾는 나의 태도는 꽤 호기로웠다. 오늘의 쾌락은 내일의 게으름을 낳는다. 그러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술시. 나의 게으름은 술장고를 채우는 부지런함으로 체면을 세우고 그런 생활이 일상이 될 즈음 내 몸으로부터  옐로 카드를 받았다.

나의 나빠진 건강상태가 꼭 나의 탓이 아닐 수도 있으나, 자연의 순리라 하더라도 최소한 역행하려는 노력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 몸 하나 컨트롤 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인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번쩍 든다. 


그래, 게으름을 먼저 끊자. 평소 낮잠 자면 큰일 아는 줄 알았던 내가, 체력이 떨어지니 자꾸 눕고 싶어 진다. 입맛이 도는 것도 아닌데, 자꾸 아무 생각 없이 군것질을 한다. 몸이 둔해지니 정신력도 약해지고 오늘 꼭 해야 하는 것들이 내일 해도 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 겪어보기 전엔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던가. 내가 '저렇게 될 동안 뭐 했지?'라고 욕했던 사람의 모습이 거울 앞에 나타났다. 그동안 애써 모른 척했던 거울 속 그림을, 거실 벽에 걸린 사진 속 모습으로 복원하고 싶었다. 운동화를 신어 보았다. 발이 아팠다. 그동안 두꺼워진 발과 활동 반경이 좁아진 발목은 생각지도 않고 운동화부터 주문해 본다. 하루 좀 늦게 와도 되는 신발은 내 마음의 속도보다 더 빨리 그날 저녁에 도착했다. '그래, 하루 더 미루면 뭐 해'라고  나의 의지력을 시험하며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집에서 나올 땐 새로 산 운동화에 등 떠밀려 나온 기분이었는데, 막상 공원을 걷다 보니 술 마신 후 느긋해지는 두뇌의 작용과 비슷한 나른한 공기의 호흡이 느껴졌다. '어? 생각보다 힘들지 않네?' 오랜만에 파워 워킹이라 금세 지칠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 늘 걷던 사람처럼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까지 허락되었다. 그때, 내 앞에 다가온 멋진 그녀가 나의 시선을 빼앗아 간다. 빨간 민소매 상의에 빨간 핫팬츠를 입고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한눈에 보아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었는데, 탄탄한 몸매가 그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유독 뛰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 아니면 그동안신경 쓰지 않던 달리기가 이제 와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탓일 지도 모른다. 나의 가벼운 발걸음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니, 언제부터 이렇게 달리는 사람이 많아졌을까? 마라톤도 유행인가? 하는 생각도 잠시, 좀 전에 스쳐 지나갔던 달리기 요정이 다시 내 앞을 지나간다. 그 순간, 나도 러닝 할 때  느낄 수 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고 싶었다. 100미터만 뛰어도 헥헥거리는 내가 5킬로미터를 뛸 수 있을까? 한 번도 궁금하지 않았던 달리기가 오늘따라  나의 시선을 붙잡았다.


'달리는 사람 부러워하지 말고 걷기나 해!'라고 충고하듯, 마른번개가 계속 친다. 마치 저 먼 곳에서 불꽃놀이를 하면 잔상이 일듯이 주변 구름에 램프가 켜지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등교 버스가 내 앞을 지나가도 절대 뛰지 않았던 나다. 허둥지둥 버스 타는 것이 싫어 항상 등교를 일찍 할 정도로 뛰는 것에 인색했다. 빈혈이 심한 탓도 있었지만, 심장이 터져 나가는 그 느낌이 싫어 체육시간에  오래 달리기를 하면 갖은 핑계를 대며 학교 스탠드에 앉아있던 내가 비 오면 집까지 뛰어가야지 생각을 한다. '러닝화를 사야 하나?' 무슨 일이든 항상 제대로 된  연장부터 갖추려는 나의 욕망이  삐죽 나왔다 들어간다. 다행히 집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오지 않았지만, 비 맞으며 뛰는 상상을 하면서 설레어보긴 처음이다. 달리기를 흠모하는 날이 오다니.. 오늘 좀 이상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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