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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피쌤의 책장 Oct 05. 2023

쏘피쌤의 책장

영어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나의 책장에는 대략 500권의 영어 책이 꽂혀있다. 박스에 담긴 원서들까지 합치면 700권은 족히 된다. 수업할 때 학생들과 함께 읽는 그림책, 챕터 북, 청소년 문학 작품들이 반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읽었던 책들, 그중에는 읽다가 접어둔 책들도 상당수다. 중고서점이든 인터넷 서점이든 어쨌든 모두 직접 산 것이니 취향이 반영된 나만의 북 컬렉션인 것이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니 소설과 논픽션이 반반 나름 균형 있는 독서를 하고 있다고 일단 토닥토닥해 본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 대부분은 최근에 구입했거나 나름 표지가 예쁜 책들이 각자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세상에는 아직도 읽을 책이 너무나 많기에 저 책장 위에 책들을 다시 읽게 될 확률은 상당히 희박하다. 그런데 나는 왜 먼지만 쌓여가는 저 책들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지금이라도 당장 알라딘 중고서점에 싸들고 가서 팔면 그래도 노트북 한 대 값은 나올텐테.. 왜 십 년도 훨씬 전에 읽은 책마저 이렇게 싸고 이고 짊어지고 있는 걸까? 마치 저 책들이 나의 지식과 영어 실력을 보여주는 증표라도 되는 양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저렇게 책장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저 책들 그런데 사실 정말 그런 걸까. 일단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내가 연례행사로 만드는 북트리의 주재료는 원서이다. 색색깔의 원서들을 큰 책부터 작은 책 순으로 탑 쌓듯이 쌓아 올리면 그 자체로 멋진 트리가 된다. 싸구려 구술 전구만 대충 휘둘러줘도 그 나름의 감성이 돋보여 비싼 트리가 하나도 안 부럽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원서의 인테리어 효과, 그건 또 어쩔 건데? 요즘은 카페에 가면 속은 텅 빈 원서 흉내 낸 종이박스로도 많이 장식해 놓은 거 보면 나만 영어책의 자태를 예뻐하는 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장식효과로만 책장의 세를 내고 있기에는 아까운 책들이다..


     

 내게 처음 영어책 읽는 기쁨을 안겨줬던 ‘행복한 이기주의자’『Your Erroneous Zone』, 두 번을 읽으면서 함께 여행하느라 책이 세 동강이가 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Eat, Pray, Love』, 명상이라는 걸 가르쳐주고 삶을 더 깊게 바라보게 해 준 ‘상처받지 않는 영혼’『The Untethered Soul』, 가끔 펼쳐보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책 좀 빌려줄래?’『I Will Judge You by Your Bookshelf』 한 권 한 권 정든 친구 같은 책들이다.   




  

 

 저 책장 위 책들에는 영어 때문에 좌절했던 순간들이 그리고 책 속에 친구들과 교감하며 울고 웃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 추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어 읽은 책의 리뷰를 블로그에 옮겨 담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3년이 넘었다. 댓글로 내 글을 읽고 자신도 원서 읽고 싶다는 피드백에 용기를 얻어 온라인 북클럽을 열었다.  

   

  밴드 모임을 시작으로 회원수 30명이었던 리북스는 21년 4월 카카오 오픈 채팅방으로 이사하면서 한 달 만에 80명이 가입해서 함께 영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현재 23년 10월 네이버 리북스 카페에는 1400명이 모여 있다. 매달 평균 100명 이상 함께 소통하며 영어책을 읽고 있다.   

   

 사실 내 꿈은 영어책이 사방에 놓여있는 예쁜 북카페를 여는 것이었다. 원서 큐레이터가 되어 손님들의 영어 한풀이도 들어주고 영어책을 읽어 본 적 없는 이들에게 수준에 맞고 재미있는 책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맛있는 커피 마시면서 원서를 읽어볼 수 있는 그런 멋진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을 이어 줄 용기가 부족했던 탓에 나의 꿈은 빛바랜 책들과 함께 책장에 꽂혀있었다.    

 

 책장의 꽂힌 책들을 예쁜 북카페로 옮기지는 못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책 읽기를 전하고 있으니 꿈을 반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든 책들을 그냥 이대로 버리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이 친구들을 소개해주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3년 뒤 나의 책장에는 어떤 책들이 꽂혀 있을까? 그 책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내가 책들을 어디로 데려갈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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