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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피쌤의 책장 Oct 06. 2023

원서읽기 영업왕 쏘피쌤입니다

내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

나는 미용실에 일 년에 세 번 정도 간다. 그나마 긴 머리를 가볍게 다 듣는 정도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단골인 미용실에는 특별히 찾는 디자이너도 없다. 오늘도 처음 본 디자이너에게 거리낌 없이 머리를 맡겼다.


- 어떤 스타일로 잘라드릴까요?

- 그냥 깔끔하게 다듬어주세요. 귀찮아서 긴 머리가 제일 편하네요.

- 맞아요. 긴 머리가 관리하기 제일 편해요.

- 근데 또 매일 똑같은 스타일이라 수업받는 학생들이 지겨워할 거 같아요.

- 아! 선생님이시구나!

- 네. 초등학생들 영어 가르치고 있어요.

- 하... 영어... 저도 영어 배우고 싶은데, 시간도 없고 영어는 정말 어려워요.


 ‘영어’라는 소재로 보통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 십중팔구 반응이 비슷하다. 로망과 열등감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긴 탄식이 그렇다. 사실 영어 선생님이라는 정보를 흘린 건 의도가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영업이 들어갈 타이밍이다. 


 먼저 ‘왜 영어를 배우고 싶은지’ 묻는다. 보통은 뚜렷한 목표가 없거나, 외국 여행 가서 편하게 말하고 싶어서라고 답하는 정도다. 그럼 ‘어떻게 영어 연습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역시 방법을 잘 모르거나 시간이 없어서 못 하고 있다는 답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MBTI 유형 질문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생뚱맞게 들릴 수 있지만 성격유형은 독서취향을 파악하는데 꽤 도움이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MBTI 이야기를 하면 더 관심을 갖기 때문에 영업의 성공확률이 높아진다.


  나는 2년 전부터 네이버에서 쏘피쌤의 책장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20대 청년 고객 A가 상담을 요청해 왔다. 상담이 시작되자마자 그는 이미 다양한 영어 연습 방법에 실패했다고 토로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서 읽기가 도움이 될까 문을 두드린 것이다. 무심한 듯 시크한 그는 소설 읽는 건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성과를 중시하는 ESTJ의 기운이 느껴졌다. 간단한 영어 인터뷰를 통해 영어실력을 파악해 봤다. 30분가량의 대화 후 내가 그에게 추천해 준 책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의 원서 『Atomic Habits』였다. 두께는 제법 됐지만, 문장이나 어휘가 어렵지 않아 성취감을 얻기 딱 좋은 책이다. 더불어 습관 만들기의 실질적인 조언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 그가 좋아할 것 같았다. 그 후 그는 ‘책을 잘 읽고 있고,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어 고맙다’는 짧지만 기분 좋은 메시지를 보내왔다.


 첫인상이 어딘지 주눅 들어 보이는 30대 직장인 여성 B는 원서를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다고 했다. 영어 인터뷰를 해보니 유창하지는 않지만 자기 생각을 문장으로 곧잘 구사하는 중급이상의 수준이다. 쉬우면서 삶의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책을 추천해주고 싶었다. ‘선물’과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저자 스펜서 존슨의 최신작 ‘내 치즈는 어디에서 왔을까?’의 원서를 소개했다. 『Out of the Maze』는 전체 80페이지로 분량도 적고 문장이 쉬워서 완독 하기 좋은 책이다. 상담 내내 의기소침해 보였던 그녀가 이 책을 읽고 자존감을 얻기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우리는 매주 한번씩 온라인에서 함께 책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만날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근래 직장 상사와 갈등으로 회사생활이 힘들었고 의욕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고 했다. 그런데 원서를 읽으면서 자신감을 많이 되찾게 되어 기쁘다고 했다. 두 번째 책 '해빙'『Having』을 읽고, 회사 일이 바빠져서 수업은 마무리해야 했다. 


 도서관 수업이 있는 날은 전 날부터 설렌다. 회원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원서들을 하나둘씩 챙기다 보니 어느새 가방이 한 보따리다. 무거운 책들에 어깨는 처졌지만, 설렘에 마음의 어깨는 가볍다. 우연히 도서관 홍보를 보고 처음 영어책을 집어든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주부가 가장 많고, 간혹 가다 20대 청년이나 중년 남성분도 보인다. 매주 정해진 분량의 책을 읽고 와서 자유롭게 생각을 나눈다. 한 문장 한 문장 해석하는 영어 수업을 기대했다가 다소 당황스러워하는 표정도 보인다. 하지만 이내 적응하고 편안하게 책에서 얻은 영감을 나눈다. 영어책을 읽었지만, 한국어로 이야기하니 큰 부담이 없다. 마지막 수업을 끝낼 때쯤에는 ‘내가 원서를 완독 했다니!’라는 성취감에 상기된 표정이 이곳저곳 보인다.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주부로서 오랫동안 살면서 잃었던 꿈을 되찾았다는 후기들도 종종 보인다. 이런 피드백을 얻는 도서관 수업을 내가 어찌 기다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원서읽기 영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미용실 낯선 디자이너와 우연히 들린 카페 사장님과도 주고받는 대화의 끝은 늘 영어책 이야기로 마무리 지어진다. 나도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서 읽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영어를 오랫동안 연습했고 잘하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영어는 돼지저금통이 아니다. 10년이 넘게 연습한 기술을 한 번도 제대로 못 써먹는 건 정말 한스럽기까지 하다. 운 좋게도 나는 즐겁고 유익하게 영어를 써먹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책에서 수많은 선생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친구를 사귀며 감동을 나누는 것이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 기술을 통해 얻는 통찰은 성취감이라는 성과급을 준다. 때로는 그 보너스가 더 두둑해서 이 도전은 멈출 수가 없다. 우리는 정말 좋은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꼭꼭 숨기고 싶거나 또는 마구 여기저기에 알리고 싶어 진다. 나는 후자 쪽이었고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원서읽기 영업을 하고 다니게 됐다. 


 3년 동안 영어책 읽는 북클럽을 운영하면서 수백 명이 함께 원서 읽으며 영감을 주고받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지켜봐 왔다. 단순히 영어 공부를 하려고 시작한 원서 읽기가 삶을 얼마나 빛나게 해 주는지 더 알리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메아리를 외치고 싶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노트를 펴고 연필을 들어 우리의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당신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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