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기는 없고 겁은 많았다
“우리 집은 0동 000호야! 우리 집에 놀러 와!”
국민학교에 들어가고 처음으로 친구란 걸 사귀었을 때, 깍쟁이 같은 그 애가 인심 쓰듯 말해주었다. 토요일 방과 후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말이다. 유치원을 다른 지역에서 나왔고 학교생활 내내 숙맥이었던 나는 나름 ‘인싸’였던 아이(최진희)의 호의에 많이 설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헤어진 그 애를 방과 후에 한 번 더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진짜 0동 000호에 가서 벨을 누를 용기도 없었고, 눌렀는데 그 애가 없으면 어떡하지?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짜장면 하나요, 우리 집 00동 000호예요’라고 말할 만큼의 작은 용기가 7살의 나에겐 없었다. 엄마가 “놀러 오랬다매. 한번 가봐~” 라고 용기를 북돋워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걱정투성이인 나는 그 애가 집에 없을까 봐, 낯선 사람이 나올까 봐 무서워서 그 동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숫기가 지독히도 없었다. 주소가 확실한 친구네 집 초인종을 누를 용기도, 집에 오는 전화를 받거나 걸 만큼의 호기가 전혀 없었다. 하긴, 백화점 마네킹 앞에만 데려다 놓아도 기절하기 직전으로 얼어붙었던 아이였으니.(나는 10살 무렵까지 마네킹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다. 작은 언니는 나의 이런 약점을 알고 뉴코아에 가면 가끔 내 눈을 가리고 ‘자, 좋은 데 가자~’라며 안내한 다음 마네킹 바로 앞에 데려다 놓았다. 눈을 뜬 나는 소리도 못 내지르는 졸도 직전의 상태가 되었다. 웃기는 거는 매번 알면서도 속았다는 거다).
엄마는 이런 내 성격을 알았을까. 소심 중에서도 극도로 소심한 성격을 본인 자식이 갖고 태어났다는 걸, 혹은 본인의 기질도 어느 정도 그러했는데 그걸 꼭 닮은 아이가 나왔다는 걸. 그래도 온화함과 단호함, 온탕과 냉탕이 공존하는 엄마의 성격을 어느 정도는 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