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5. 6.
20대 후반 무렵이었나. 페이스북에 슬슬 결혼 관련 광고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둘 연을 맺는 가까운 이들을 축하하며, 나의 결혼식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나도 참 궁금했다. 막상 결혼 준비를 시작해보니 그 현실적인 과정은 낭만적 상상과 사뭇 달랐다.
보통의 소비는 나이가 들수록 쉬워진다. 옷을 고르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점심 메뉴를 정하는 일상적 선택에 가끔 새로운 변수가 들어오는 식이다. 특히 생필품이 아닌 사치품은 정해진 구매 기한이 없는 경우가 많고, 경험으로 쌓이는 나름의 기준과 취향 덕에 의사결정이 점차 수월해진다.
특이하게도 웨딩 업계는 소비자만 아마추어고 공급자는 베테랑이다. 선택할 아이템 종류도 많고 금액 단위도 큰데 알아볼수록 선택지가 늘어나 도통 가늠이 어려웠다. 부르는 게 값인 것 같고 뭘 해도 나만 호갱이 된 것 같은 불투명한 시장에서 어떤 결정도 자신 있게 최선이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나마 중심을 잡은 건 뉴질랜드에서 참석한 친구의 결혼식 덕이었다. 점심 무렵 시작된 식은 단정하지만 아름다웠고 밤이 깊도록 다 같이 어울려 즐길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상황은 역시 많이 달랐다. 그래도 함께하는 사람들과 가능한 오래 눈 맞추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자주 웃고, 촘촘히 기록하는 데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막상 당일이 되자 야심 차게 준비한 모든 게 불꽃놀이처럼 삽시간에 팡팡 터졌다. 직접 고른 장소, 의상, 화장, 동선, 촬영팀, 친구에게 부탁한 꽃, 스냅사진, 엄마 한복, 아빠 멘트. 방울방울 맺혔던 고민의 결론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청심환 한 알에 마음이 맑아진 덕인지 내가 연출이자 주연이라는 부담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반짝이는 그 순간을 같이 구경했다.
물론 뜻밖의 일도 많았다. 전날 밤 모처럼 나란히 누운 엄마의 코골이에 잠을 설치고, 반지를 두고 가서 식순에서 제하고, 사진작가님은 신랑 양말을 검정으로 바꿔달라고 하시고, 입구에서 헤매느라 늦은 친구와는 사진을 제대로 못 찍고, 부탁드린 축가는 우리말 버전으로 불려졌다.
알 이즈 웰. 아무렴 괜찮았다. 작은 식이라 널리 못 알렸는데도 반가운 얼굴이 가득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따뜻한 축하를 받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예전에는 결혼이라는 점 하나를 찍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쭉 그어가는 선처럼 느껴진다. 생의 시작은 주어진 가족과의 삶이었지만 이후에는 내가 선택한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이어진다(고 새로운 룸메이트가 말했다).
따스한 봄이 되니 반가운 청첩이 속속 찾아온다. 끝없는 고민과 선택의 무게를 슬며시 가늠해본다. 과정도 결과도 온전히 둘의 몫이니 아쉬움 없도록 톺아보기를. 그를 아는 모두가 다정한 지지를 보내고 있으니 불확실한 상품과 서비스의 바다에서 힘을 내기를. 둘만의 아름다운 불꽃을 튀겨내기를.
페이스북 연애 상태를 변경한 탓일까. 더 이상 관련 업체는 소개되지 않는다. 대신 샤워헤드, 세탁조 세제, 마사지 기계가 등장한다. 89년생 기혼 여성들이 많이 찾는 모양인데, 나도 자꾸 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