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마음

몇 년간 몇 번의 공모전에 떨어지고 나서 “다시는 공모전을 위한 글은 쓰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그리 대단한 공모전에 나간 것도 아니고, 오래 준비한 것도 아니었는데 만만하게 보다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글쓰기를 하지 않는 동안 몸은 편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뭔가 할 일을 자꾸 미루는 듯한 찜찜함이 들었다. 갈수록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강렬해졌다. 

결국, 얼마 안 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책의 첫 문장을 따라 썼다. 첫 문장을 쓸 때 작가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었다. 작가는 이 문장을 어떤 마음으로 썼을까. 문장력을 늘리고 싶은 마음보다 작가가 된 마음을 느껴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쓴 글에 확신이 없었다. 한동안 이런 마음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글을 쓰지 않을 핑계는 넘쳐난다. 써야 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글쓰기는 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내가 쓴 글을 좋아하려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두려워서 자기 검열이 심했다. 아무것도 아닌 날 것 그대로의 내 모습이 벌거벗은 것처럼 수치스럽게 느껴져서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정여울 작가는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에서 좋아하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고 한다. 나도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글쓰기를 피하는 이유가 업으로 삼는 일을 피하고 싶어서일까? 

글쓰기는 나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야 하는 일이라서 두렵다. 그저 먼 발치서 바라보다 가끔 끄적이면서 영원히 작가 지망생으로만 남아 있으면 안전하다. 글을 쓰지 않는 마음에는 비겁한 겁쟁이가 살고 있다. 나는 그토록 바라는 일에서 실패를 마주할 용기조차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공부나 글쓰기는 나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글쓰기로 얻을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즐기지 못했다. 아직도 완전히 내려놓은 건 아니지만 그런 명분이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는 걸 안다.     

몇 년씩 기약 없는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까. 데뷔작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작가를 보면 습작 기간만 10년 가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은둔의 세월 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무명의 세월이 있었기에 성공하는 사람이 많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 그 이면에 숨은 노력을 간과하면 안 된다.      

 

나는 습작 기간만 몇 년, 아니 언제일지도 모를 세월을 견딜 수 있을까.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산 기간을 인생 1회차라 하고, 그 기간만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2회차라고 해보자. 인생 2회차에는 지금처럼 글 쓰고 공부하면서 사는 일상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1회차에는 돈이냐 꿈이냐 고민하다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삶을 살았다. 고통스럽고 힘든 날이 많았지만, 후회는 없다. 다만, 원하는 삶을 인정하고 실행할 용기가 부족한 점은 아쉽다. 

인생 2회 차에는 너무 아등바등하고 불안해할 것도 없이 그저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사는 거다. 화려한 이력도 없고, 대단한 업적을 이루지 못해 잠깐 실망할 수는 있다. 그 또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쓰는 마음을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