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장 생활은 흑역사로 가득하다. 조직 생활 자체가 맞지 않는 유형인데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다 보니 이직을 밥 먹듯이 하면서 꾸역꾸역 이어갔다. 학원 강사부터 광고 기획자, 에디터, 부동산 업무까지 다양한 일을 했지만, 어느 것도 오래 하지 못했다.
그중 사보를 만드는 일은 적성에 잘 맞는 듯하면서 오래 가질 못했다. 취재하고, 글 쓰고, 책 만드는 일을 좋아하지만, 박봉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몇 개월 만에 관둬놓고, 그나마 경력직이라고 또다시 지원하는 한심한 짓을 반복하다가 종지부를 찍는 면접을 보게 된다.
여느 때처럼 사보 에디터 경력직 구인공고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출했는데 면접에서(서류 합격은 잘 된다) 담당 팀장에게 “글의 깊이가 없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글의 깊이가 없다.
이 말은 사회에서 나의 글쓰기 실력을 최초로 평가받은 말이다. 당연히 기분이 나빴다. 속으로는 ‘그러는 너는 얼마나 잘 쓰나 보자’하고 벼르면서 표정 관리를 억지로 하며 “어떻게 하면 좋아지겠냐?”라고 물었다. 팀장은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일단 많이 보라”는 식의 뻔한 말을 하며 최종 합격을 시켰다. 그러나 팀장의 평가가 부담이었는지 입사 첫날이 마지막 출근이 되었다.
첫 출근 후 자기 전에 밤새 생각해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마침 면접을 본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다. 그 팀장과 통화도 하기 싫어서 다음 날 아침 문자메시지로 통보하는 개념 없는 짓을 저질렀다. 다른 회사로 간다는 나름의 정당한 사유가 있었지만, 속내는 그 팀장에게 또 나쁜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 도망친 거였다.
그 뒤 내 글의 평가를 받은 건 한 인문학공동체의 철학 수업에서였다. 철학 선생님답게 문학적인 면보다 논리력과 독창성, 개연성 등을 평가했다. 선생님은 “탁월한 분석적, 비판적인 철학적 재능이 있다”라며 다소 후한 평가를 주셨다. 특히 “철학적 문제의식을 일상과 결합해 구체화하는 실천적 추진력은 보기 드문 장점”이라며 생전 처음 듣는 칭찬을 받았다.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대학원에 진학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원동력까지 되지는 못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은 늘 잠재되어 있어서 글쓰기 첨삭을 해 주는 유료 강의를 신청했다. 이메일로 첨삭을 해 주는 방식이었는데 뭔가 나랑 맞지 않았다. 1주 차 평가를 받기도 전에 2주 차 글을 새로 써서 보내야 하니 타이밍이 어긋난 느낌이었다.
글쓰기 첨삭 수업이 흐지부지 끝나고, 이번에는 서평 수업을 들었다. 수업 전에 책을 읽고 미리 감상을 올리는 과제가 있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대충 써낸 서평을 보고 “수준 이상의 필력을 가지고 있다”라는 의외의 칭찬을 하였다. 신이 나서 열심히 서평을 썼는데 선생님은 고맙게도 대가 없이 일대일로 피드백을 해 주셨다.
그때의 피드백이 내 글이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선생님은 내 글을 기억하고 있다가 오랜만에 서평 수업을 다시 들었을 때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까지 평가해 주셨다. 글이 사람 따라 성장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쓸 때도 글쓰기 평가를 받았다. 지도교수님은 내가 기본 필력을 가지고 있으니 잘할 거라며 격려해 주셨다. 그동안 다양한 경로로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받을 때마다 이리저리 흔들렸다. 몇 안 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글쓰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공모전에 떨어지거나 SNS에 올린 글의 반응이 신통찮으면 또 자신감은 곤두박질쳤다.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 하락은 자기 불신을 불러왔고, 스스로 자격 미달이라고 단정 지었다. 글을 제대로 써 본 적도 거의 없으면서 평가에만 예민하게 굴다 보니 꾸준한 글쓰기가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예민함을 글쓰기에서 장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글쓰기에 자신이 없을 때마다(거의 그렇지만) “글의 깊이가 없다”라는 말이 맴돈다. 얼마나 더 깊이 파고 들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내 손을 떠난 글은 내 것이 아니다. 글을 완성함으로써 내 역할은 끝났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두려움과 불안, 온갖 감정의 찌꺼기를 덜어내는 정화 작업이다. 글을 쓰고 난 뒤에 벌어지는 일은 내 소관이 아니다. 그 글이 잘돼서 사람들의 호응을 받든, 공모전에 떨어지든 간에 그런 일을 기대하며 쓴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글쓰기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늘의 글쓰기를 이어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