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미친 짓일 수 있는 결혼의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더는 감정 소모뿐인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연애는 싫지만 사랑은 계속하고 싶다. 그럼 이제 결혼했으니 사랑이 끝났을까? 아님 완성되는 걸까?
“자기야. 결혼하면 연애가 끝나?”
“결혼 생활이 시작되니까 끝난 거겠지?”
내 질문에 함정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남편은 조심스레 답했다.
“그럼, 사랑은? 가족이 됐으니까 끝나는 건가?”
“나는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말이 제일 싫어. 결혼했으면 더 사랑해야지 뭘 끝나?”
몇 년간의 혹독한 조련 끝에 모범 답안을 내놓는 남편의 대답에 흡족해하며, 문득 연애와 사랑의 차이는 뭘까 궁금해졌다. 20대에는 사랑을 하려면 연애를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0대에는 사랑이 결혼으로 마무리되는 거라 여겼다.
‘연애(戀愛)’의 사전적 의미는 “성적인 매력에 이끌려 서로 좋아하여 사귐”이다. ‘사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다.
사랑하지 않아도 연애는 할 수 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가능한 게 연애니까. 나는 연애를 시작할 때는 즐거웠다가 어느 순간부터 고통스러워서 어떤 식으로든 빨리 끝내고 싶었다.
사랑은 더 하다. 연애보다 상처가 아무는 속도가 더디다. 연애가 끝나면 공허하다. 사랑이 끝나면 뭐가 남을까? 사랑이 끝나면 글쎄, 일단은 조금 변한 나 자신이 남는다. 사랑이 끝난 후의 나는 거지 존을 겨우 탈출한 헤어스타일을 가진 모습만큼 변해있다.
<라캉, 사랑, 바디우>의 저자 박영진은 “사랑은 종종 우리의 삶을 소리 없이 전복시킨다”라고 했다. 티 나지 않게 소리 없이, 본인만 알 수 있는 묵직한 변화를 남긴다. 그 이유는 “사랑은 잠재적 정신병의 상태인 보통 정신병(Ordinary Psychosis)과 닮은 고요한 재난”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미친 짓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제대로 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미친 사랑일수록 끝나면 후유증이 심하다. 몸과 마음에 번아웃이 온다. 나이 들수록 사랑보다 중요한 가치가 많아진다. “이 나이에 무슨 사랑 타령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사랑하길 권한다.
박영진 저자의 말대로 사랑을 사유하는 것은 무제한적인 관대함을 요구하는 일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그 어떤 감정이 우리에게 무제한의 관용을 베풀 수 있을까?
나는 죽을 때까지 사랑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