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오후, 남편과 카페 나들이를 왔다.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남편이 갑자기 말도 없이 휙 나가버렸다. 그새 주문 완료 벨이 울렸다. 남편은 밖에서 통화 중이었다. 브런치 겸 음료까지 이것저것 주문해서 혼자 두 번을 오가며 날랐다. 그제야 들어온 남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묵묵히 커피만 마셨다. 기대한 맛이 아니었다. 남편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문한 빵과 음료를 먹기 바빴다. 자기 몫을 다 먹고 나자 핸드폰을 보는 모습에 폭발하고 말았다.
“뭐 그리 급한 일이라고 꼭 그렇게 말도 없이 나가?”
“혼자 맘대로 할 거면 뭐하러 같이 와?!”
나는 쉴 새 없이 쏘아댔다. 전화가 걸려온 것도 아니고 급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식사 중에 걸려온 전화를 적당히 끊지 못하고 붙잡고 있어서 싸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은 그냥 생각난 대로 행동했을 뿐이고 나를 무시할 의도는 아니라는 걸 알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 너무 무례한 행동이 아닌가. 무심코 한 행동이라도 무시하는 느낌이 들 때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어?”, “나를 사랑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 걷잡을 수 없이 감정에 휩싸여 자존감이 곤두박질친다.
윤홍균 정신의학 전문의는 <자존감 수업>에서 “당신이 만약 자존감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사랑을 힘겨워할 것이다. 원치 않는 의심이 생길 것이고, 행복한 시간보다 싸우는 시간이 길 것이고, 상대의 무심함에 자주 화가 나고, 내가 더 사랑한다는 생각에 외로울 수도 있다. 또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 심하게 자책을 하거나 자괴감에 빠져 지낼 수도 있다.”라고 했다. 모두 나를 두고 하는 말로 들렸다. 그렇다면 자존감을 회복할 때까지 사랑을 멈춰야 할까?
다행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사랑에 기대는 이유는 그만큼 사랑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고, 사랑은 자존감을 갉아먹기도 하지만 치유해 주기도 하니까 섣부른 결론을 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다행이다. 한 정신과 의사의 말 한마디에 왔다 갔다 하는 모습도 자존감이 낮은 행동이 아닌가 의문이지만 위안은 된다.
자존감이 낮으면 사랑이 힘들긴 하다. 반대로 자존감이 높으면 사랑이 쉬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사랑은 자존감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서 내 상태와 상관없이 사랑이 불시에 찾아오기도 한다. 자존감과 사랑하는 마음은 별개니까. 단, 마음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으면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사랑과 자존감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사랑이 힘들 때 정말로 자존감 탓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른 일로 지쳐서 심신에 여유가 없거나, 자존감 말고 다른 문제로 힘든 게 아닌지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 설사 자존감 때문이라도 자신을 자책하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일요일 오후의 브런치는 남편의 돌발 행동으로 분위기를 망쳤지만,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남편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사과해서 계속 화내기는 뭐하고, 그렇다고 바로 화를 풀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아직은 자존감과 사랑의 적절한 균형 유지가 어렵다.
지금은 내 감정이 어떤지 알아채는 작업 중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전 연애사를 다 바쳤다. 자존감을 키우면 사랑도 커질까? 자존감이 높으면 사랑을 아낌없이 주어도 아깝지 않다. 사랑과 자존감의 적절한 균형은 평생 해결해야 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