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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Oct 18. 2023

그거 하면 돈 돼?

정신분석학 석사를 마치고 바로 박사 과정에 등록했다. 

논문 쓰는데 기력을 다해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게으른 나를 잘 알기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도 관두고 대학원이나 다니면서 팔자 좋은 소리 한다’라는 양심의 소리도 한몫했다.      


박사 과정과 동시에 심리학 학점은행제도 등록했다. 내면의 목소리에 찔려 학구열을 되살린 건 아니다. 공부로 얻는 기쁨이 크지만, 공부할수록 학자 유형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만 확고해졌다. 게다가 학자금 대출로 공부를 계속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구심을 품은 채 여기까지 왔다.      


학자금 대출로 신학기 등록을 할 때마다 엄청난 고민에 휩싸였다. 뭐 대단한 공부라고 굳이 빚까지 내야 하나 싶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남편은 자신이 못 해줘서 미안하다며 공부를 계속하라고 격려한다. 부모님이나 오빠는 뭘 공부하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졸업하면 좋은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지만 궁금해했다.   

   

나는 당장 돈을 번다기보다 수련도 따로 해야 하고 어쩌고 하니까 못 알아들었는지 재차 “그거 하면 돈 돼?”라고만 묻길래 “하기 나름”이라며 애매한 대답만 했다. 엄마는 더는 묻지 않았고 나도 설명을 포기했다.     

뒤늦게 공부를 해 보니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다. 대학을 졸업한 지 한참 지나서 대학원에 가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입학은 쉬워도 끝까지 해내기는 어렵다.      


엄마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하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 “이번 학기만 끝나면 휴학할 거야!”라는 말을 맨날 입에 달고 살았다. 한편으로는 논문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쉴 새 없이 떠올랐다. 학기 내내 이런 양가감정으로 오락가락했다.     


그런데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남편의 공이 크다. 공부하기 전 나의 에너지는 항상 타인을 향해 있었다.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민감했고, 직장에서 적응하기 위해 가뜩이나 예민한 기질에 더욱 날을 세웠다. 


공부는 내 마음을 본격적으로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정신분석을 전공하면서 자기분석을 할수록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찌꺼기가 물 위로 떠 올라 혼탁해진 것처럼 마음이 어지러웠다. 케케묵은 감정은 현재가 되었다. 과거의 수많은 후회와 그때 미처 하지 못한 타인에 대한 분노와 자책까지 뒤엉켜 버거웠다. 대학원 생활도 기대했던 것만큼 즐겁지 않았고, 사람에 대한 실망만 커졌다. 


한동안 그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논문 작업으로 바빠지면서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지금도 그 마음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다. 대신 좀 더 과거의 감정과 현재의 나를 분리해서 객관화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그거 하면 돈 돼?”라는 질문에는 명확하게 답하지 못한다. 열등감으로 시작한 공부가 여기까지 왔으니 어디까지 갈지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공부하니까 뭐라도 달라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내 모습이 좋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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