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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Nov 24. 2023

다시 정상으로(2)

소피의 카우치에 초대합니다 P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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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출근 복장을 하고 집을 나섰다. 

오늘은 한 달간의 병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하는 날이다. 이제 앨리스가 아닌 ‘이지수’로 돌아올 시간이다. 소피의 조언대로 유리병에 못다 한 말을 써서 바닷가에 던지고 온 뒤로 악몽을 꾸지 않았다. 


몇 년 만에 수면제 없이 잠이 들고 꿈도 꾸지 않는 게 어색했다. 이혼 후 딴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달려왔다. 쓰러지는 바람에 한 달간 병가를 얻었지만 적절한 휴가였다. 


지수는 몇 년 간 늘 같은 출근길이건만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첫 출근할 때처럼 약간 설렜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지수는 마음이 힘들 때 유일하게 자신을 위로해 준 건 책이었다. 언제나 책은 자신의 편이었다. 이혼 후 다 관두고 떠날까 생각했다가도 집에 있는 것보다 책으로 둘러싸인 도서관에 있는 게 나았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도서관 입구에서 반겨주는 경비 아저씨에게 눈을 마주치며 인사했다. 지수가 근무하는 도서관은 신도시에 위치해 규모가 크지 않아서 모두 한 가족처럼 잘 알고 지낸다. 근면 성실의 대명사였던 지수가 한 달간 병가를 낸 이유가 뭔지 아마 소문이 쫙 퍼졌으리라. 


지수와 마주친 사람들은 뭔가 물어보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녀를 배려해서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가방을 두고 구두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있는데 옆자리 동료인 김주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찍 나오셨네요?”


“아! 김주임, 오랜만이에요.”


“이제 몸은 좀 괜찮으세요? 쓰러진 뒤로 처음 뵙네요.”


김주임은 눈치 없이 대놓고 말하는 스타일이라 처음에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사람과의 거리를 칼같이 지키는 지수로서는 김주임이 부담스러웠다. 하필 옆자리라 대놓고 무시하기가 뭐 했다. 악의 없는 말이라는 걸 아니까 지금처럼 훅 치고 들어와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네. 덕분에 푹 쉬어서요.”


“부럽다! 나도 휴가 가고 싶네요.”


지수보다 세 살 어린 김주임의 철없는 말에 뭐라 대꾸하려는데 직원들이 하나 둘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지수는 박팀장과 눈이 마주치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쓰러졌을 때 동생 희수에게 연락하고 여러모로 편의를 봐준 선배이자 멘토 같은 분이다. 쉬는 동안 연락을 못했는데 얼굴을 보고 인사라도 해야 했다. 


똑. 똑.


박팀장은 노크 소리에 지수라는 걸 알아챘다. 박팀장은 지수가 처음 도서관 사서가 되었을 때 사수였다. 박팀장이나 지수나  둘 다 일과 사생활을 철저히 분리하는 원칙주의자라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누지는 않는 편이다. 다만 오래 알아온 사 이인만큼 서로 배려하고 있다는 걸 마음으로 느끼고 있었다. 


“복귀한 거야?”


“네, 팀장님. 덕분에 휴가 잘 보내고 왔어요.”


“뭐 내 덕분인가. 정당하게 쉬어야 할 권리를 누린 것뿐인데.”


지수가 모아둔 휴가를 정당하게 쓴 건 맞지만 한 달씩이나 몰아서 쓸 수 있었던 건 박팀장이 손 써준 덕분이다. 도서관의 일은 남들이 보기엔 평화롭고 정적으로 보여도 잔손이 가는 일이 많았다. 이번에도 도서관 행사를 새롭게 기획하면서 담당자인 지수의 공백을 메우려면 다들 업무가 과중된다. 

박팀장이 직원들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적절하게 업무 일정을 조율해 주지 않았더라면 한 달이나 쉬는 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괜히 김주임이 시기 어린 투정을 부린 게 아니다. 


“쉬는 동안 연락 못 드려서 죄송해요. 쓰러졌을 때 동생이 올 때까지 병원에 있어준 분이 팀장님이라는 걸 동생을 통해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괜찮아졌으면 됐어. 그래도 복귀 후 첫날이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고, 기존 업무 인수인계하는 일부터 해.”


“네, 팀장님.”


지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뒤돌아 나가다가 다시 돌아보았다. 지수가 인사를 끝으로 나갈 거라고 여긴 팀장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뭐 더 할 말 있어?”


“저, 좀 갑작스럽게 들릴 수도 있으시겠지만 제가 그동안 좀 이상하게 보이셨죠?”


……


박팀장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가 업무 외에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가 드문데 왜 이런 질문을 할까 궁금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제가 이혼한 건 이미 소문이 났을 거고, 그 뒤로 쓰러지기까지 했으니까요.”


“박주임 사생활은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박주임이라면 말 못 한 사정이 있었을 거고 본인 잘못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지수가 대꾸하려고 입을 열기 전에 박팀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이혼은 결혼 실패일 뿐 인생 실패라는 뜻은 아니잖아? 남들이 뭐라든 신경 쓰지 마. 사생활로 일에 지장을 주지만 않으면 돼. 물론 그런 적도 없고.”


박팀장은 연년생 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이라 그런지 지수의 말속에 담긴 속내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지수는 왈칵 눈물이 나려고 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동안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의 세상에 갇혀 있었다. 박팀장의 말을 들은 순간 남에게 이해받고 싶었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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