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카우치에 초대합니다 Part.2
지수는 박 팀장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 지수의 반응을 보고 오해했는지 박 팀장이 말을 덧붙였다.
“아, 물론 이혼 안 하면 결혼 성공했다는 뜻은 아니야.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거지 오해는 마.”
“팀장님도 그래요?”
월요일 아침에 회사에서 나눌 대화는 아니었다. 평소라면 대답만 하고 나갔을 텐데 지수는 물어보고 싶었다. 반발심은 아니었다. 늘 완벽해 보이는 팀장도 그렇다면 좀 더 힘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다.
“말도 마. 잘 사는 건 애초에 포기했어. 그냥 매일 해야 할 일을 꾸역꾸역 해내는 것뿐이지.”
박 팀장은 지수 앞에서 만큼은 괜찮은 척하고 싶지 않았다. 이혼녀라서가 아니라 지수라면 어디 가서 자기 얘기를 퍼트릴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아서다. 큰 이변이 없는 도서관 업무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건 남의 사생활이기에, 악의 없이 퍼트린 말 한마디가 어디까지 불어나는지 10년 차 워킹맘으로서 체감했다.
그 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직원들과 더욱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다. 박 팀장은 지수가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사생활 얘기를 일절 하지 않는 걸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 어떤 위로보다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지수가 박 팀장의 사무실에 들어간 뒤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자 옆자리의 김 주임은 둘이 대체 무슨 말을 할까 궁금했다.
“수연 씨, 얘기가 길어지는 거 같지 않아?”
김 주임과 입사 동기인 최수연은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바로 알아챘다. 둘 다 회사의 스캔들을 수집하는데 재빠른 성미라 오랜만에 출근한 지수는 관심대상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한테는 말 안 한 것들을 얘기하는 거 아닐까?”
“무슨 말?”
“뭐, 잘 모르지만 박 주임님 이혼한 뒤로 몸이 계속 안 좋았잖아? 이혼이 순탄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들이 있던데.”
김 주임은 수연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평소보다 아침 인사를 잘 받아주는 지수의 모습에 좀 더 물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수가 박 팀장의 사무실에서 나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김 주임이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얘기가 길어지셨네요? 팀장님께 언짢은 소리 들은 건 아니죠?”
지수는 속이 뻔히 보이는 김 주임의 말에 평소처럼 말을 돌리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박 팀장과 나눈 대화 이후 좀 더 마음의 문을 열기로 마음먹었다.
“그럴 리가요. 쓰러질 때 응급실까지 같이 가주셔서 몸이 좀 괜찮은지 물어보셔서요. 업무 복귀 관련한 일도 얘기하다 보니 길어졌네요. 김 주임도 나 대신 일 맡아줘서 고마워요.”
“뭘요. 어쩔 수 없긴 했지만요. 미안하면 점심 사요!”
김 주임은 지수가 먼저 고마움을 표시하자 의외였다. 직설적인 성격의 김 주임과 감정 표현에 인색한 지수는 서로 상극이었다. 업무상 어쩔 수 없이 협력해야 하는 일이 많아 암묵적으로 예의를 차리며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해 왔다.
“그래요. 오늘 내가 살게요.”
오전은 지수가 쉬는 동안 동료들이 대신해준 업무 인수인계를 받느라 바빴다.
어느새 점심시간.
지수는 오랜만에 직장 동료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동안 불면증 때문에 점심시간만 되면 직원들이 다 나가길 기다렸다가 사무실에서 눈을 붙였다.
“박 주임님, 제 말 듣고 있어요?”
“네? 아, 미안해요. 아직 적응이 덜 됐나 봐요.”
도서관 근처 돈가스 맛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김 주임은 지수가 쉬는 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얘기를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먹으랴 말하랴 입이 닫힐 새가 없었다. 지수는 김 주임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어느 순간부터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피에게 말해야 하지 않을까.
박 팀장에게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어졌다. 만나고 싶지만 소피가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할 수가 없어서 망설여졌다. 소피와 있으면 지금껏 알던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복귀한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일이 좀 적응되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자신과 타협하는 동안에도 김 주임은 계속 떠들고 있었다.
김 주임은 남들이 모르는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이 주목하는 시선을 즐겼다. 안정적이고 일이 편해 보여서 도서관 사서가 되었을 뿐 업무에 애정은 없으면서 직장 일에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대화한다고 서로 교감하는 것이 아니듯 김 주임과 지수의 첫 사적인 얘기는 겉돌기만 했다.
점심과 커피까지 코스로 산 지수는 김 주임과의 대화가 슬슬 지쳐갈 때쯤 동생 희수에게 전화가 왔다.
가족의 전화가 반갑기는 오랜만이다.
전화를 핑계로 김 주임과 떨어져 통화 버튼을 눌렀다. 김 주임은 그새 수연을 만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응, 왜?”
“언니! 전화 좀 그렇게 안 받으면 안 돼?”
“이 시간에 전화 잘 안 하잖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희수는 언니의 성격을 잘 알지만 이럴 때마다 질색했다. 다른 사람들은 커갈수록 자매 사이가 더 돈독해진다는데 어째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무슨 일이 난 건 아니고. 엄마 호출. 이번 주말에 아버지 생신이잖아.”
“그래서?”
지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이혼한 후로 집에 간 적이 없다. 엄마와 동생만 가끔 자신의 집에 찾아와서 만났을 뿐 아버지는 못 본 지 몇 년 되었다.
“언니! 그러지 말고 오랜만에 다 같이 가족끼리 모이자. 아빠가 먼저 엄마한테 말했나 봐. 언니 오라고.”
이제 와서 왜?
반발심이 먼저 올라왔다. 지수가 입 밖으로 꺼낸 건 속마음과 다른 말이었다.
“그래.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