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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Dec 08. 2023

꿈을 찾아서(1)

소피의 카우치에 초대합니다 Part.2

https://brunch.co.kr/@sophy100/162


  

해운대에서 앨리스와 만났던 쥰은 다음날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동네에 갔다.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던 동네는 재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어쩌다 용돈을 받은 날이면 100원을 손에 꼭 쥐고 문방구로 달려갔다. 책은 비싸니까 대신 공책에 직접 이야기를 만들었다. 고사리 손으로 쓴 이야기를 할머니에게 읽어드리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도 “내 새끼 잘한다”라며 칭찬해 주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쥰의 글을 읽어줄 사람이 없다. 쥰은 ‘독자’를 가지고 싶었다. 온라인에 글을 써서 올렸다. 팬이 생겼지만 악플러도 생겼다. 한번 악플에 크게 상처받고 나니 글을 올리는 게 두려워졌다. 대신 공모전에만 출품하기로 하고 세상에 내놓기를 멈췄다.      


외할머니와 살았던 동네의 골목길은 아직 그대로였다. 전봇대를 끼고 우회전해서 쭉 가다가 다시 네 갈래로 갈리는 길 끝까지 가면 살던 집의 위치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골목길을 걸었다. 길가에 검은 점박이 무늬의 길고양이 한 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너도 집이 없니?    


야아 옹!          


“미안. 지금 줄 게 없네.”     


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양이는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빠르게 사라졌다. 이 동네에 와서 유일하게 마주친 생물인데 외면당하니 좀 외로웠다.      


소피는 왜 행복했던 추억의 장소에 가보라고 했을까.     


쥰은 마지막으로 가서 따져 물어야겠다고 벼르며 골목의 갈림길에 섰다.      


어?!     


문방구였다. 어린 시절에 100원을 꼭 쥐고 달려가곤 했던 문방구는 세월의 흔적으로 형태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입구에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불은 켜져 있는데  문을 닫은 상태였다. 폐업 처리가 덜 된 건지 장난감과 실내화, 문구류 따위가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누구여?”     


쥰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괜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살아생전 외할머니와 비슷한 연배의 할머니였다.      


“아! 저 다름 아니고 제가 어릴 때 이 동네 살았는데요. 여기 문방구를 자주 왔었는데 오랜만에 와서 보니까 하는지 궁금해서요.”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는 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할머니는 그녀를 지나쳐 열쇠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주인이구나.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친절했던 주인아줌마와 얼핏 닮았다.     


쥰이 뒤돌아 가려는데 “안 들어오고 뭐 하누?” 라며 할머니가 불렀다.      


들어오라는 소리였구나.      


분명히 밖에서 볼 때는 폐업한 가게였는데 쥰은 제 눈을 의심했다.      

난독증에 이어 헛것이 보이나? 요즘 맨날  이상한 꿈을 꿔서 그런가?     


문방구는 어린 시절 자주 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불량 식품, 흰 실내화, 실내화 주머니, 온갖 캐릭터 상품, 스티커, 과학 준비물, 소고, 탬버린, 멜로디언, 다양한 크기의 수첩과 필기구까지 시간이 멈춘 듯 모두 제자리였다. 다시 밖으로 나가서 안을 들여다보려고 몸을 돌리다가 멈췄다. 이대로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주인 할머니는 가게 뒤 작은 창고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쥰은 할머니를 부르는 대신 어릴 때 구경하던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학교에서 필요한 준비물(그때는 가정통신문을 직접 써야 했는데 깜박하고 챙겨가지 않아도 문방구에 오면 다 알 수 있었다.)이 있는지 살핀 후 바로 왼쪽 불량식품 코너를 지나 별모양, 캐릭터 모양 등의 알록달록한 스티커를 구경한 뒤 노트와 필기구 코너에 멈춘다. 


학교에서 쓰는 노트는 정해져 있지만 쥰은 노트보다 수첩을 모으는 걸 좋아했다. 8살짜리의 한 손에 잡히는 노트는 없으니  조그만 수첩이 휴대하기 좋았다.      

옆으로 착착 넘기는 수첩과 위로 삭삭 넘기는 수첩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는 짜장면이냐 짬뽕이냐만큼 고르기 어려웠다. 한참을 서서 구경하고 있는데 창고로 사라졌던 할머니의 발소리가 들렸다.      


“낯이 익은데 골목 맞은편 빨간 벽돌집 함주댁 손녀 아니냐?”     


“어떻게 아셨어요?”     


쥰은 자신을 한눈에 알아보는 주인 할머니의 안목이 놀라웠다.      


“왜 몰라. 우리 집 단골손님인데. 함주댁이 볼 일 보러 갈 때 우리 문방구에 맡기기도 했잖여. 할머니 몰래 달고나 만들다가 달고나가 팔목에 튀어서 울고 난리 쳐서 병원에 가자니까 도망쳤지.”    

 

“맞아요! 아직도 흉터가 남았어요.”     


주인 할머니의 말대로 쥰의 팔목에는 아직도 달고나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할머니에게 혼날까 봐 몰래 숨기다가 수포가 터져 진물이 흐를 지경이 되자 어쩔 수 없이 이실직고해서 할머니가 기겁했었다.  

    

“거봐! 그때 병원 가자니까 말 안 듣더니만..”     


주인 할머니가 쯧쯧 혀를 차며 카운터 아래로 몸을 숙여 뭔가를 뒤적였다.      


“옛다!”     


“이게 뭐예요?”     


주인 할머니가 내민 것은 요술 방망이였다. 어릴 때 한창 유행하던 만화영화의 주인공이 가지고 나온 요술 방망이는 인기템이었다. 여자 아이들은 요술 방망이보다 왕관을 더 좋아했지만 쥰은 요술 방망이가 너무나 갖고 싶었다. 외할머니에게 사달라고 하기엔 매달 부모님이 보내는 양육비가 턱 없이 모자라는 걸 알기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보면 몰러? 손녀 생일 선물이라고 하도 함주댁이 닦달해서 다 팔리고 딱 하나 남은 걸 여태껏 가지고 있었잖여.”     


쥰은 돌이 되기 전에 외할머니에게 보내져서 8살까지 함께 살았다. 외할아버지가 편찮으신데 학교도 다니는 그녀를 돌봐줄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부모님과 살기 전까지 외할머니가 보호자였다. 


쥰의 서울행은 갑자기 결정되었다. 어른들끼리 한 결정을 쥰이 알게 된 건 떠나기 전날 밤이었다. 생일을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다. 외할머니가 내일 아침에 엄마가 데리러 온다고 짐을 싸라고 했을 때 가기 싫다고 밤새 목 놓아 울다 지쳐 잠들었었다. 할머니가 생일 선물을 준비해 놨을 줄은 몰랐다.      


핑크색의 요술봉은 알록달록한 홀로그램 스티커가 손잡이를 감싸고 정 중앙에 조잡한 큐픽이 달려 있었다. 요술봉을 잡고 흔들면 반짝반짝 불이 켜졌다.      


삐루삐루~ 이루어져라~ 얏!     


만화영화 주인공이 이상한 마법 주문을 외며 요술봉을 흔들면 악당이 한 번에 나가떨어졌다.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그야말로 마법 요술봉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가장 바랬던 선물을 받았다. 


5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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