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글쓰기 슬럼프가 온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쓰는 일상이 버거울 때가 있다. 하다못해 기약 없는 공모전이라도 도전하는 이유는 자체 마감을 만들기 위해서다. 특히 아침에 글을 써야 집중이 잘 되는데 그 시간을 놓치면 하루가 뒤죽박죽된다.
오전에 하지 못한 하루 치 글쓰기를 저녁에 메꾸려고 하면 자야 할 시간에도 뇌가 깨어있어서 또 잠이 안 온다.
글 쓰는 데 가장 방해받지 않는 시간은 새벽이다. 몇 시간 못 자도 새벽에 일어나 글 쓰고 다시 자면 된다.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일어났을 때 몸 상태가 별로라는 핑계로 다시 자 버렸다. 딱히 잠이 들지도 않고 깨어나지도 않는 애매한 상태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을 날려버렸다.
글쓰기 루틴을 만들면서 동시에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라 글쓰기 루틴에 필요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체감한 후로 다시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신경 쓴 것은 체력이었다.
날 때부터 저질 체력이었다고는 하나 운동하면 좀 나았다. 운동하러 가기 직전에 저항이 제일 심한데 이것만 넘기면 운동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종일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서 허리 디스크에 좌골 신경통까지 도져서 힘들었다. 오래 글 쓰고 공부하기 위해서라도 운동은 꼭 해야 했다.
처음에는 걷다가 조금씩 뛰어 봤다. 땀이 조금 나면서 훨씬 개운했다. 운동했다는 느낌이 났다. 같은 시간을 해도 뛰는 게 훨씬 효과적이었다. 지금은 걷는 코스도 다양하게 바꾸고 달리기를 20분 정도 한다. 뛸 때마다 참 한결같이 처음 뛰는 것처럼 힘들다.
단 5분이라도 뛰자는 마음으로 몸을 움직이면 아주 작은 성취감이 든다. 그 기분으로 글쓰기 동력을 얻는다. 불행히도 수면 패턴은 여전히 불규칙하다. 아마 제일 오래 걸리지 않을까 싶다. 운동해도 몹쓸 불면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슬럼프나 컨디션 난조로 글쓰기 루틴을 지키지 못한 날이 있어도 나름의 성과가 있다.
우선 글 쓰면서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
평소 예민한 기질을 일상에 쓰지 않고 글쓰기로 모으면 감각을 칼날로 예리하게 가는 것처럼 된다. 글을 쓰는 행위가 내게는 가장 고도의 집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논문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에너지 소모가 필요하다.
둘째, 글 쓰는 태도가 달라졌다.
한 달 넘게 벽보고 쓰다 보니 잘하고 있는 건지, 이대로 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하다못해 SNS에 올린 글의 조회 수가 폭발하거나 출간 제의가 오긴커녕 여전히 심해에 파묻혀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눈에 띄는 구체적인 성과는 없지만,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 쓰는 글을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두려움은 사라지고 글쓰기 자체에 집중하게 되었다.
셋째, 아이디어를 수시로 메모하는 버릇이 생겼다.
메모 습관은 즉시 효과를 보았다. 그동안 글 쓰는 건 각잡고 자리에 앉아서 백지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행위였다. 쓸 말이 많을 줄 알고 막상 쓰려고 하면 막막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면 또 쓰기를 미루게 된다. 이러면서 맨날 쓰지는 않고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만 하는 언행 불일치의 생활이 계속되었다.
메모하면 조각난 생각을 이어붙이기만 해도 글이 된다. 메모하면서 생각보다 내가 정말 많은 생각을 한다는 걸 알았다.
와,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지난 메모를 보며 나의 창의력에 혼자 감탄하면서 이건 대박감이라며 김칫국을 마신다.
마지막으로 글쓰기 루틴을 지키지 못하는 날에도
되도록 운동은 하려고 노력했더니 그때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올랐다.
어제도 달리기하면서 문득 든 생각은 만약 지금 내가 공모전에 당선이 되지 않고, 다른 어떠한 경로로도 내 글을 인정받지 못해도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거다.
결국, 나는 작가로 살게 될 거고, 많은 작품을 쓸 것이다.
글을 씀으로 인해 얻게 되는 풍요는 조금 앞당겨지거나 늦춰질 수 있어도 결론은 변함없다. 이 생각을 놓칠세라 달리다 말고 메모 앱을 켜서 바로 기록했다.
무슨 근거로 이런 확신이 드는지 모른다. 자기 위안일 수도 있고, 자기 최면에 가까운 자신감일 수도 있지만, 확신이 들고 나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슬럼프가 일단락되고 나서 저녁에 잠시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글 쓰는 모습을 보고 옆에서 프로 같아 보인다고 했다.
글 쓸 때 있어보인다니 덤으로 얻은 효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