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의 추억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같은 반 여자애들에게 단체로 절교 쪽지를 받은 적이 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데 주동자의 심기를 건드려서 그 애가 반 여자애들을 선동한 짓이었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 아이들은 순진해서 주동자가 “oo랑 놀지 마”라고 하자 자신이 똑같이 될까 봐 얼른 절교 선언을 했다.
반나절 만에 대부분 여자애에게 절교 쪽지를 받은 나는 처음에는 덤덤한 척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점심시간에 밥도 먹지 않고 한참을 엎드려 울고 있는데 반에서 잘 나가는 소위 인싸인 남자애가 날 보더니 여자애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대충 “왜 이런 짓을 하냐”라는 식의 나무라는 투였다. 그 남자애가 나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참으로 인류애가 넘치는 부반장이었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 됐다.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사과했고, 사건은 한나절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흔적이 남아 있다.
어릴 때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날 이후로 친구들에게 먼저 잘해주려고 애썼다. 내 일보다 더 앞장서 도와주고 그들의 고민에 귀 기울였다. 이런 성향은 30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친구들이 나에게 고민 상담하는 걸 뿌듯하게 생각하는 실속 없는 헛똑똑이였다.
30대 초반, 친하게 지내는 대학 동기들이 있었는데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시작한 후로 또 왕따를 당했다. 내 책임도 있다. 친구보다 남자친구와 더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없이 연락을 끊고, 아무리 연락해도 씹힐 정도로 잘못한 적은 없다.
한동안 연락이 없어도 친구들이 오기를 바라면서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들이 결혼식에 ‘오기는’ 했다. 그때 입은 마음의 상처는 꽤 오래가서 30대 내내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을 때마다 악몽으로 나타났다.
불필요한 인간관계의 정리는 이혼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 후로 인간관계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직장이나 공통 관심사를 지닌 스터디 그룹에서 만난 지인과는 아무리 가까워도 친구가 되기는 어려웠다.
처음에는 내심 기대했었다. ‘친구’라고 말할 사람이 딱히 없었으니까 친구가 그리웠다.
나이가 들어서 만난 사람과는 아무리 통하는 면이 있어도 어릴 때처럼 친구가 되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함부로 인연 맺지 말라”는 말대로 살았다. 적당히 예의를 갖추되 관계에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 갔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인간관계만큼은 옳고 그름이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 마음은 한결 편해졌지만, 후유증이 있다.
일종의 관계 단절의 후유증이랄까.
일단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는 걸 주저한다.
사람들과 교류는 하지만 되도록 관계는 맺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한번 실망하고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칼같이 자른다. 그 사람과의 관계를 자른다는 게 아니라 내 마음속에서 ‘여기까지’라고 딱 선을 긋는다.
어떤 면에서는 건강한 바운더리일 수도 있다. 문제는 예전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사람 관찰이 취미일 정도로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글을 쓰는 내가 사람에 관심이 없다는 건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사람 자체에는 관심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다.
어떻게 하면 관계의 벽을 쌓는 게 아니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처 입지 않을까 고민했다. 혼자라서 외로움을 느낄 시기는 지났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간직하고 싶다.
이 둘 사이의 밸런스를 갖추는 게 어렵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타인의 평가에 신경 쓴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누가 나를 천 번 흔들면 흔드는 만큼 천 번, 이천 번까지 흔들렸다. 지금은 한 백 번 정도 흔들리는 것 같다. 흔들려도 원래대로 회복하는 탄력성도 더 빨라졌다.
이 정도만 해도 어디인가.
그 이상을 바란다면 어디 산에 가서 도 닦고 수행을 해야 한다. 한때 아주 잠깐,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포기했다.
아직 내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인연은 파도처럼 왔다 갔다 한다. 관계는 단절되었다가 예기치 않게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관계에 기쁨보다 실망한 적이 더 많지만 지나친 염세주의자는 되지 않으려고 한다.
인간관계는 혼자가 아니라 둘이 함께 추는 춤이다.
나와 손을 맞잡고 즐겁게 춤을 출 단 한 사람을 위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