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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Dec 05. 2023

나를 지키는 수면 시간

불면증과의 사투

요즘 내 인생 최대의 적은 ‘불면증’이다. 


불면증과의 인연은 십 년이 넘는다. 본격적으로 시달린 지는 한 5년 전부터인데 몸 상태에 따라 상태가 가지각색이다. 24시간을 넘어 30시간 가까이 깨어있어도 잠이 오지 않거나 두 세 시간 이상 연속해서 잠을 자지 못한다. 작정하고 누워도 해 뜰 때까지 누워만 있는 등 다양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전날 새벽 4시에 잠들어서 3시간 자고 여태껏 깨어있다. 일찍 자려고도 해봤다. 밤 12시 전에 잠들면 4시간 이상 못 자고 꼭 깬다.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어서 좋지 않냐고? 잠에도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존재하지 못 잔 만큼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저께는 8시간을 한 번도 깨지 않고 내리 잤다. 억수로 운이 좋은 날이다. 자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리는 게 빠를 것 같다.     


한 가지 꽂히는 일이 있으면 해결될 때까지 그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몹쓸 예민함이 폭발하는 날이면 불면증 당첨 백 퍼센트다. 


잠이 안 오는 이유는 늘 있다. 모기 한 마리가 계속 윙윙대며 괴롭히거나, 허리 디스크가 도져서, 비 오기 직전이라서, 고민이 많아서, 해야 할 일을 다 끝내지 못해서, 낮잠을 자서, 다음 날이 기대되지 않아서, 혹은 계속 잠이 안 와서?      


처음에는 자기 전에 따뜻한 우유를 마신다든지 베개를 바꾸고 불빛을 완전히 차단하는 등 주변 환경에 신경 썼다. 직장에 다니면 잠을 자든 못 자든 강제로 출퇴근을 해야 하니까 수면 리듬이 흐트러져도 며칠 안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저녁형 인간이라 그런가보다 가볍게 생각했다. 

것도 30대 중반까지의 얘기다.      


불면증은 갈수록 심해져서 직장 시간 루틴에도 수면 패턴은 아랑곳하지 않고 들쑥날쑥했다. 수면 패턴과 직장 생활 패턴이 엇박자가 날수록 정말 괴로웠다. 원하는 시간에 맘대로 자 보는 게 소원이었다.  

   

과거에는 수면 시간이 적을수록 ‘열심히’ 산다고 착각했다.      


“3시간밖에 못 잤어. 그런데도 나는 이러이러한 일도 하고 있어. 참 대단하지? 참 열심히 사네?”     


 뭐 이런 근거 없는 착각. 가진 게 없으니 그나마 열심히라도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특히 직장에 다닐 때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 시간 말고는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 잠을 줄이는 게 당연했다. 가장 헌신(짝 취급)했던 직장 상사는 하루 4시간만 자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일 중독자였다. 본인만 그럴 것이지 온 가족에게 강요해서 한창 잠을 자야 할 어린 자식들까지 괴롭혔다. 잠은 죽어서 충분히 잘 수 있다는 그 상사의 말을 어리석게 동의했다.   

   

1년 만에 심신이 만신창이가 돼서 일을 관둔 후 회복하기까지 곱절의 시간이 걸렸다. 사람마다 수면 패턴이 다른 걸 간과했다. 그 상사는 4시간만 자도 머리만 닿으면 바로 잠드는 유형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능력이다.      


수면 시간보다 수면의 질이 중요한데 7시간을 자도 선잠을 자니 4시간 동안 잔 사람보다 피곤했다. 자다 깨다 하니까 수면의 질이 낮고 피곤했다. 푹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다고 느낀 게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프리랜서가 되면 출퇴근 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니까 좀 나아질 줄 알았다. 이 또한 착각이었다. 잠이 올 때 자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마감 때문에 오히려 몰아서 일할 때가 많았다. 출퇴근이 없으니 언제 쉬어야 할지 몰랐다.      


불면증의 형태는 점점 다양해졌다. 


단순히 잠이 오지 않는 상태는 언젠가는 자게 되어 있다. 가장 악질적인 형태는 너무 피곤해서 쉬고 싶은데 뇌가 각성상태로 깨어있어서 누워도 잠이 오질 않는다. 겨우 잠들만하면 여지없이 화장실 때문에 깬다. 밤에 화장실을 자주 가는 게 괴로워서 몇 시간 전부터 물 한 모금 안 마셔도 소용없다. 한의원에서 이런 증상을 잡는 게 제일 힘들다고 했다.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나아져도 그때뿐, 다시 또 반복됐다.      


차라리 깨어있는 시간이 많으니 그 시간에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까 시도해봤다. 


정수리에 피가 쏠리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실제로 목덜미를 타고 관자놀이를 지나 머리 꼭대기까지 찌르르한 느낌과 함께 피가 쏠리는 듯한 상태가 되면 멍해진다. 깨어있는 것도 자는 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글도 안 써지고, 심지어 영상도 보기 힘들다. 그냥 이 상태로 누워서 시간만 죽인다.      


할 일은 많은데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스트레스다. 지금도 약간 그런 상태다. 자고 일어나서 머리가 맑은 적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항상 배터리가 절반 이하로 차 있는 기분이다. 운동도 해봤다. 달리기도 해 보고, PT도 받아봤다. 지속할 수 있게 할 수 없는 게 문제였다. 늘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그냥 불면증을 어느 정도 숙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 못 자면 나중에 잠이 올 때 자지 뭐. 


“3시간밖에 못 잤어”가 아니라
“3시간이라도 잔 게 어디야”로 생각을 억지로 바꿨다. 


자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려고 노력 중이다. 조금이라도 잘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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