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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Dec 04. 2023

예상 밖의 인생

남편이 족저근막염이 심해져서 물리치료를 받아도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른다며 “이건 예상 밖의 일”이라고 했다.      


언제 우리 예상대로 된 일이 있어?   


...없지.


예전 같으면 덩달아 불안해하며 걱정에 불면증이 도질텐데 지금은 그 불안을 한 번쯤 관조할 여유는 생겼다. 살면서 예상대로 된 적이 없다면 지금같이 예상치 못한 상황은 역설적으로 지극히 ‘평범한’ 상황이다.       

살면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얼마나 있던가. 


거의 없다. 내가 서프라이즈를 싫어하는 이유다. 영화의 결말을 미리 알고 봐야 마음이 편했다. 깜짝 파티나 예상치 못한 일 자체가 불안을 가중하는 스트레스였다. 


IMF 때 아버지의 실직 후 빚 독촉에 시달리며 암울한 20대를 보낸 일종의 후유증이랄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예민함이 극대화된다. 타고난 예민함과 불안정한 가정환경이라는 환상의 콤비는 참 많이 아프게 하고 오랫동안 괴롭혔다.      


한때는 꿈꾸는 걸, 희망을 품는 걸 포기했다. 

맨날 실망하고 나만 상처받는 희망 고문은 그만하고 싶었다. 그냥 살아가자고, 현실을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사실은 또 상처받을까 봐 미리 방어막을 치는 핑계에 불과했다. 인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와 직결되는 문제이다. 나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의 끝은 내 꿈과 맞닿아 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것,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과거의 실패 경험으로 인해 더 크게 다가왔다.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고 곱게 자란 친구가 인생을 더 행복하게 살지도 모른다고 자조했었다.  

    

지금 당장 좋거나 나쁜 일이 일어나도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경우가 많다. 눈앞의 불행에 너무 깊게 빠져서 온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걱정으로 잠 못 이룬 적이 많다. 


막상 돌이켜보면 딱히 기억나지 않는다. 동트기 직전이 제일 어둡고, 터널에 있으면 어두컴컴해도 결국엔 통과하게 되더라. 나는 너무 어리석게 그 사실을 망각했다.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그것에 맞게 대처하면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제는 서프라이즈도 어느 정도 기대하며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은 내가 서프라이즈를 싫어한다는 핑계로 프러포즈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프러포즈를 할 거면 예고하라고 경고(?)한 걸 후회한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이루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인생은 원래 뜻대로 되지 않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걸 인정하고 나면 언제일지 몰라도 서프라이즈처럼 내가 원하는 일을 이루게 되었을 때 얼마나 기쁠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오늘 내가 덜 불안한 것도 그래서였다. 상황을 대하는 나 자신이 달라지면 당상 변하는 게 없어도 다음에 또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지금보다 수월하게 수습할 힘이 생긴다. 그 힘이 점점 커지면 ‘충분히 일어날법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을 미리 방지하는 능력이 생길 거라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대하게 된다.      


아무리 안정을 추구한다고 해도 변수는 늘 있다. 나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하루에 단 몇 줄이라도 감정을 정화하는 글쓰기를 하고, 단 5분이라도 감사 명상을 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아주 작고 하찮은 나만의 성취감을 차곡차곡, 64겹의 페이스트리보다 더 풍성하게 쌓아서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비하는 중이다.    

  

인생은 불안의 연속이다. 


세포는 불안정해서 진화를 거듭해 생존한다. 불안을 건강한 성장의 원동력으로 바꿀 수 있다. 

일단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여기지 말 것. 

이 두 가지만 명심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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