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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Dec 12. 2023

‘애매한’ 재능을 찾아서

나만 없어, 재능


‘1만 시간의 법칙’을 좋아했다. 


재능이 없어도 노력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의 증거였다. 사람들이 가장 착각하기 쉬운 법칙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과연 있기는 한 것인지 잘 몰라도 재능을 찾으면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못하는 일을 억지로 노력하면 고통스럽지만 잘하는 일을 더 잘하게 하면 즐겁다. 내 재능이 뭔지는 몰라도 어디에 재능이 없는지는 명확했다.      

지금 내가 불행한 건 재능을 발휘하지 못해서 일 거야!라고 셀프 세뇌를 했다.      

그러니 하루빨리 내 재능을 찾아야 했다. 재능을 찾아서 지금이라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면 뭐라도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20대 때부터 온갖 직장을 전전하고, 공부하고,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알아보고 시도할 수 있는 만큼 해봤다.      


결과는? 

작심삼일의 대명사라는 자체 불명예만 얻었다.     


‘재능(才能)’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개인이 타고난 능력과 훈련 때문에 획득된 능력”을 뜻한다. 타고난 그것뿐만 아니라 훈련 때문에 습득된 후천적 능력도 재능이라고 한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남보다 평균 이상으로 뛰어난 뭔가가 짠하고 나타나는 일은 드물다는 얘기다. 나는 어쩌면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게으른 자신을 포장하고 싶었던 것 같다.      


“좀 하는 것 같은데?” 하며 감탄보다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재능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원석만 몇 개 손에 쥐고 있는 꼴이었다. 누군가가 “애매한 재능이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모니터를 뚫고 들어가 “네가 봤어?!”라고 멱살 잡고 따질 뻔했다. 


이 얼마나 전형적으로 찌질하고 못난 열등감의 집합체란 말인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은 점점 커져서 남이 가진 재능만 보고 부러워했다. 금수저도 재능인 사회에서 대학 동기 중 나만 어학연수를 가지 못했다. 본인의 노력으로 워킹홀리데이라도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미 집안 빚잔치를 한 마당에 해외연수는 꿈도 못 꾸고 접었다.      


대학 동기 A는 집안이 부유해서 재학 중에도 취직 대신 의사와 선을 보러 다녔다. 그 친구는 어학연수를 가든 자격증 공부를 하든 심지어 헬스를 하든 뭘 해도 금세 시큰둥했다. 나라면 저렇게 돈을 낭비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더랬다. 혼자서 뭘 이루지 않아도 되는 삶이라 그런지 끝까지 하는 꼴을 못 봤는데 나는 그 꼴을 보기 힘들었다.     


대학원에 와서 가장 부러웠던 게 외국어 능력이었다. 미국에서 태어나서 원어민처럼 영어를 하는 학우가 있었다. 그분은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도 기본은 했다. 논문 쓸 때 가장 필요한 재능이었다. 파파고가 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저 정도의 외국어 재능만 있다면 SCI급 논문은 시간문제일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재능을 썩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재능이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왜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재능 같지 않은 것만 가지고 이런 한탄이나 하게 하냔 말이다.      


한동안 이런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했다고 장담하긴 이르다. 또 내가 갖지 못한 어떤 재능을 보면 혹해서 만만한 하늘을 탓할 수 있다. 


지금의 나, 재능이라곤 애매한 것들뿐인 부족한 상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까지 거의 한평생이 걸렸다. 왜 그러지 못했을까 돌이켜보면 ‘행복’이라는 강박 때문이다. 행복을 어떤 거창한 이데아로 설정해 놓고 재능이 없어서 가지지 못한 거라고 단정 지었다.      


세상 누구라도 한 가지씩은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믿는다. 거창하게 예체능의 재능이 뛰어나서 이름을 날리는 정도의 재능은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물건을 잘 고친다거나, 지도를 보고 길을 잘 찾는다거나, 운전을 잘하는 것도 재능이 될 수 있다. 물론, 모두 나에게 없는 것들이다. 하도 재능충 마냥 재능 찾기에 집착하다 보니 사람을 관찰하고 남의 재능이 뭔지 잘 알아채는 재능 아닌 재능이 생겼다.     

 

타고난 재능은 애매해도 내가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하면 재능 언저리까지는 갈 수 있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찾을 생각은 접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너무 멀리 보고 거창한 목표를 세울수록 현실이 암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불확실한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짓은 과거에 할 만큼 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것도 재능인가?
어제보다 0.1%라도 성장했다면 재능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재능 찾기’를 놀이로 즐길 정도의 여유가 생겼으니 이 정도면 큰 성과다. 행복은 좋은 거다. 괜히 죄 없는 행복을 쓸데없다고 부정하지 말자. 나에게 없는 재능만 찾지 말고, ‘애매’ 해도 꾸준히 하고 싶은 재능을 찾아서 오늘도 행복해지자.      


애매하면 어때? 삶은 원래 애매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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