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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Dec 18. 2023

내 생각이 내 편이 아닐 때

1일 1칭찬 일지

이 에세이는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https://brunch.co.kr/@sophy100/155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매일 자신을 칭찬하는 일지를 썼다. 엑셀에 표를 만들어서 날짜별로 매일 자신에게 칭찬할 거리를 한 가지씩 기록했다.

1일 1칭찬을 기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연재의 마지막에 칭찬 일지를 정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1일 1칭찬 일지

칭찬일지는 10월 28일부터 시작했다. 


나에게 하는 첫 칭찬은 “내 몸을 위한 운동을 하고 강박을 내려놓았다” 였다. 

10월 29일. “공개한 글이 반응이 미지근해도 비관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오고 가는 수많은 사소한 감정을 나에게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칭찬으로 기록했다.     

 

매일 기록하기를 잊지 않기 위해 노트북을 켜면 모니터 바탕화면에 ‘매일 칭찬일지 쓰기’를 메모해 놓고, 하루 칭찬 일지 파일부터 열었다. 온종일 칭찬일지를 열어놓고, 노트북을 끄기 전에 꼭 기록하려고 애썼다. 당일 기록하는 걸 깜박하면 다음 날 하루를 시작할 때 기억이 남아있을 때 어제 칭찬부터 기록한다.


1일 1칭찬을 기록한 지 한 달이 넘었다. 몇 가지 사소한 변화가 있었다. 


첫째, 매일 칭찬일지를 쓰기 위해 자신에게 관심을 쏟게 된다. 

하루 중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종일 혼자 있어도 자신만을 생각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자신을 칭찬하려면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되도록 같은 칭찬을 연속으로 하지 않고 다양하게 썼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겹치지 않게 칭찬을 하려면 오늘의 나를 다른 각도에서 돌아볼 수밖에 없다.   

   

둘째,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11월 22일처럼 이틀 연속으로 몸이 안 좋은 날도 있고, 우울한 날, 화가 나는 날도 있다. 그래도 칭찬할 거리가 있다는 건 오늘 하루를 잘 살아냈구나 하는 기특함이 생긴다. 자신이 자랑스러워진다. 칭찬 일지에 뭘 쓰던 내 마음이니까 남에게 받고 싶었던 칭찬의 말을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쓰다 보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어난다.      


셋째,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법에 익숙해진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 인정하는 법, 다 좋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오늘 나를 칭찬할 거리가 없다면 나에게 덜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칭찬 일지를 쓰는 건 유치하고 단순해 보여서 전혀 나답지 않은 일이다. 

요즘 ‘골든걸스’ 예능을 즐겨보는데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모두 35년이 넘는 베테랑 가수지만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걸그룹에 도전한다. 이은미는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핫핑크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박진영도 성공한 가수이자 프로듀서지만 한 번도 이런 경력의 가수들을 모아서 걸그룹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예능이지만 이미 각자 정점에 올라서 잃을 게 더 많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답지 않은 도전을 과감하게, 프로답게 해내는 걸 감탄하며 보고 있다. 



새로운 변화를 바라면 하지 않던 행동을 해야 한다.      


칭찬일지를 언제까지 쓸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은 쓸 거리가 남아있으니 더는 쓸 게 없을 때 그만하지 않을까. 그때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완전하게 인정하게 되어서 새삼스럽게 칭찬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1일 1칭찬을 쓰며 매일 새롭게 각오를 다진다. 아무리 가야 할 방향이 명확하고 목표가 뚜렷해도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금세 흔들린다. 나의 고질적인 나쁜 습관 중의 하나가 상황이 어려워지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부터 찾는다. 꿈이고 뭐고 상황이 나쁘니까, 지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하면서 바로 놓아 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핑계는 가장 그럴듯한 핑계이다.      


누가 봐도 반박하지 못할 이유가 있다고 해서 멈추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결심은 환경이 갖춰져야만 하는 게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상황이 와도 해야만 하니까 하는 것이다.      

그 정도 각오가 있지 않으면 나는 또 하지 말아야 할 이유만 찾게 된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다 제외하고 나면 뭐가 남는가? 해야 할 이유? 아니,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9가지라면 해야 할 이유를 찾기도 전에 지친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부터 찾으면 어떤 이유를 들어도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설득력을 잃는다. 


칭찬 일지 쓰기 한 달차, 어느새 자기 믿음이 좀 단단해졌나 보다.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관성처럼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부터 하다가 칭찬 일지를 쓰다가 깨달은 점이 있다. 



내 생각이라고 해서 모두 내 편이 아니다.      


얼마 전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했다.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연구자로서 자질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수님은 “잘하고 있다”라고만 하셨다. 우리 교수님은 항상 좋은 말만 하는 분이라서 그 말에 왠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교수님은 항상 잘한다고만 하지 않으시냐”라고 감히 반문했다. 


교수님은 좀 더 정색하며 “잘하는 걸 잘한다고 하지 뭐라고 하냐?”라고 반문하면서 “학문적인 평가를 바란다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왜 타인의 평가가 필요한지, 나는 누구인가를 근본적으로 분석해 보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지금껏 타인의 목소리라고 규정해 놓은 것들, 사실 전부 내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였다. 자신이 모자란다고 여기고, 작가가 되지 못해서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생각들이 바로 나의 적, 나의 문제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아무 문제가 없다. 다른 사람이 당선되고, 작가가 되고, 나보다 인기가 많은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저런 사람이 되는데 나는 못 돼.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따위의 마음은 내 안의 적이다.     


과도한 집착은 두려움을 부른다. 뭘 해도 즐겁지 않다. 내가 창조하는 건 빛이고, 행복이고 풍요여야 한데 자꾸 어둠과 집착과 괴로움만 창조하고 있다. 스스로 만든 감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      


내가 두려워하는 건 또 실의에 빠져서 계속 글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대로 멈춰버리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아니라, 백번 천번 흔들려도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는 근성이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날아서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절뚝거리면서 도달해야 한다”라고 했다. 구르고 뒹굴고 백스텝을 해도 포기하지만 않으면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아직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어설프게나마 중단편 소설을 마무리했다. 이 글을 끝으로 에세이도 한 편 마무리했다. 한 편의 글을 완성해 본 경험은 그다음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를 막는 건 나 자신뿐이다. 

오늘도 칭찬 일지에 기록할 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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