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주부의 “오늘은 뭐 먹지?”
“난 음식만 까다롭지만, 넌 음식 빼고 까다롭잖아.”
결혼해서 가장 심각하게 부딪친 문제는 성격 차이라거나 돈문제 거나 시댁 과의 갈등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말한 문제들이 아예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거보다 더 실존적으로 와닿는 문제가 있다.
바로 먹는 문제다.
음식은 사람과의 관계를 가까워지게 하지만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한 끼를 먹어도 먹고 싶은 걸 제대로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과 함께 정도는 대충 허기만 달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 같이 살면 매 끼니마다 과장을 좀 더 보태 전쟁이다.
“오늘은 뭐 먹지?”가 단골 멘트가 되는 일상은 처음에는 즐겁다. 뭔가 매일이 새롭고 신난다. 하지만 일상이 매일 새롭다는 건 꿈속에 살고 있거나 한가한 소리다.
자신이 누구인가는 타인에 의해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라캉은 이를 두고 “자아는 이미 그 자체로 타자이며, 자아는 주체에 대한 내적인 이중성 속에서 만들어진다”(라캉 세미나 3 참조)라고 하였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자아는 타자(상대방)를 통해 내가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재발견된다.
음식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는 공룡이 와 매 끼니 밥을 해 먹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반찬 투정을 하거나 나에게 무조건 밥을 차려달라는 식의 몰상식한 요구를 하지는 않았다. 공룡이는 원하는 걸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게 서툰 타입이다. 그런 사람이 유일하게 자기주장이 확실해지는 때가 바로 ’ 음식‘이다.
나는 하루 중 한 끼만 먹고 싶은 걸 먹으면 잘 먹었다고 만족하는 편이다. 실제로 체력이 바닥이라서(차마 쓰레기라고는 못쓰겠다) 하루 한 끼 요리가 최선이다. 한두 시간 정도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나면 먹기도 전에 지친다. 허리 디스크도 있어서 식탁에 앉기보다 드러눕고 싶다.
음식은 바로 먹어야 가장 맛있을 때니까 힘없이 앉아서 숟가락을 들면 공룡이는 먹기 바쁘다. 식탁에 핸드폰을 가져오는 걸 금지한 후로 먹는 일에 더 집중해서 안 그래도 빠른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다.
대화도 하면서 좀 천천히 먹고 싶은데 도저히 먹는 속도를 맞출 수가 없다.
나 : 맛있어?
공룡 : 맛있어!
고작 이 정도의 대화를 하고 절반쯤 먹었을 때 공룡이는 이미 다 먹고 자기 자리로 가고 싶어 하는 눈치다. 빈 밥그릇 앞에서 멀뚱멀뚱 나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부담스러워 출근하는 날에는 먼저 일어나라고 ‘허락’ 해 준다. 치울 때는 같이 치운다. 항상 “잘 먹었다”,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공룡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면 “사랑한다“
“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공룡 : 사랑해!
나 : 고기를?
괜히 무뚝뚝하게 대꾸하고 자리에 앉는다. 립서비스라도 기분은 좋다. 그렇다고 막 없던 힘이 날 정도는 아니라서 지치기는 매한가지다. 매 끼니 집밥을 요구할 정도의 뻔뻔하지는 않다. 무조건 내가 밥상을 차려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공룡이는 출근하고 나는 백수나 다름없는 한량 대학원생이니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내가 하게 된다.
양쪽 집안에서 반찬이나 심지어 김치도 얻어먹는 걸 중단한 뒤로 우리가 먹는 모든 음식은 직접 만들거나 사 먹거나 둘 중 하나다. 요즘에는 밀키트나 반조리 식품이 잘 나와서 적당히 돌려먹기 하는 중이다.
문제는 대식가이자 자칭 미식가인 공룡이가 같은 음식을 두 번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김치찌개 같은 건 많이 끓여서 다음 날 연속으로 두 번까지는 먹는다. 나도 이제 요령이 생겨서 음식이 남을 정도로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고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래봤자 냉장고에 자리 차지만 하고, 결국 버리게 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공룡이의 편식을 고발(?)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공룡이와 만난 뒤 역대급 ’개싸움‘이라 부르는 두고두고 우리끼리 회자될 싸움의 빌드업을 쌓은 배경 설명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결국 터질게 터지고 말았다.
때는 바야흐로 지난 여름 밤, 공룡이가 아침 일찍 건강검진 때문에 밤부터 금식을 해야 했다. 금식이라니, 그런 가혹한 형벌을 감당하지 못한 공룡이는 차라리 잊겠다며 저녁도 거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한 끼 굶는다고) 안쓰러운 마음에 금식 시간이 되기 전에 밥을 먹으라고 깨웠다.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시래깃국이 생각나 난생처음으로 말린 시래기를 불리고(재료 선정부터 문제였다), 들깻가루도 넣어서 국을 끓였다. 자는 사람을 깨워 식탁 앞에 앉혔는데 숟가락을 들 생각도 안 하고 멀뚱히 앉아만 있는 게 아닌가.
나 : 왜 안 먹어?
공룡 : ……
차마 먹기 싫다는 말은 못 하고, 그렇다고 억지로 먹기도 싫어서 뚱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참았던 화가 폭발했다. 계속 앉아 있든 말든 혼자 먹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끓인 국 중에 제일 맛이 없었다. 맛도 없으니까 더 화가 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먹던 숟가락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 남은 국을 싱크대에 집어던지다시피 버렸다. 내 행동에 공룡이도 화가 났다. 서로 언성을 높이며 그야말로 시작도 끝도 없는 개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열받아서 또 습관성 가출(?)을 감행하고, 공룡이는 말리다 지쳐 다시 침대로 가 누웠다. 싸우다가 힘이 빠져서 자연스럽게 일단락됐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먹다 버린 시래깃국만 남은 개싸움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공룡이가 건강검진을 하는데 자연스럽게 같이 갔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서로 물어뜯어 죽일 듯이 싸워놓고 일정은 예정대로 지냈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영겁과도 같은 한 끼 공복의 시간을 지나 햄버거로 첫 끼를 채우고 조금 사람답게 대화할 수 있게 되자 먼저 말을 꺼냈다. 공룡이는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했다. 나도 잘한 건 없으니 서로 사과를 했다. 나는 싸우면 사과하면 끝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피곤한 타입이라서 왜 그렇게 했는가 원인 분석에 들어갔다.
“음식에 까다로운 거 맞추기 지쳐. 왜 매번 나만 너의 요구를 맞춰야 해? 맛없는 거 먹기 싫은 거 이해해. 나도 입이 짧은 편이니까. 문제는 생활비 아끼기로 했잖아? 지금 우리 식비가 4인 가족보다 많은 거 알아? 한정된 예산으로 매 끼니마다 네가 원하는 걸 할 수는 없어.”
공룡이도 모르진 않았다. 자신의 모자란 능력 탓을 할까 봐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음식 스트레스가 심한지 과거를 잘 알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했다. 서로 몰라서 싸운 게 아니다.
그럼 해결책은?
우선 나에게 ‘요리금지령’이 내려졌다.
우리의 공통된 지론이 한 가지가 있는데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일을 하자”이다. 먹는 거 좋아하고, 쇼핑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앞으로 장도 보고, 메뉴도 정하기로 했다. 일하는 날에는 시간이 없으니 내가 주로 요리를 하되, 미리 합의한 메뉴대로 하니까 반찬 투정은 금지하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공룡이도 요리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검증된(?) 맛인 배달음식을 시키기로 했다. 배달 음식 메뉴 정하는 것도 모두 그의 몫으로 넘겼다. 특별히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많이 먹는 사람이 먹고 싶은 걸 시키는 게 맞다고 본다.
처음에는 신이 나서 이것저것 시키더니 일주일도 채 안돼서 항복했다. 비용도 그렇고, 한정된 예산에서 시키자니 무슨 연봉협상보다 더 치열한 고민을 한 시간 넘게 하다가 금세 지쳤다.
그 뒤로 택한 건 밀키트와 반조리 식품 섞어 먹기. 이것도 몇 가지 먹다 보면 지쳤다. 공룡이 일의 특성상 새벽에 퇴근하고 오면 갈 데가 편의점 밖에 없었다. 집 앞 편의점 VIP가 되도록 출근 도장을 찍으니 더 이상 먹을 게 없었다.
음식에 진심인 공룡이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요리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에세이는 주부가 된 공룡이(용주부)의 본격 요리에세이다. 요리 에세이지만 레시피는 없다. 왜냐? 내가 만들지 않아서 레시피도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까. 나는 그냥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편의점 컵라면이 질리니까 라볶이 라면과 불닭볶음면을 섞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데 여기다 모차렐라 치즈와 통조림 콩을 넣으니 적당히 매워서 맛있게 먹었다.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가끔씩 생각나는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