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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Mar 24. 2024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게 가능할까

1일 1닭 스페셜


요즘 드라마 '눈물의 여왕'이 화제다. 

독자로서 드라마를 보지는 않지만, 인기 있는 영화나 드라마가 있으면 작가 지망생으로서 어떤 식으로 스토리를 전개했는지 흥미를 가지는 편이다. 극 중 남녀 주인공은 결혼 3년 차 권태기에 있고, 남편은 이혼을 꿈꾸는데 아내가 시한부 선고를 받으면서 다시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다. 개인적 취향을 떠나서 뻔한 클리셰를 비틀어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엮어가는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사랑의 완성이 결혼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결혼하면 더 이상 남편과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 가족이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사랑이 완성되면 사랑이 없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는 셈이다. 


사랑의 형태가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중요한 건 어떤 모습이든 그 안에는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다. 


결혼을 해도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느껴지는 상대이고 싶다. 든든한 동지애, 가족애, 헌신적 사랑 다 좋다. 그래도 그 중심에는 처음 서로 사랑했던 그 마음이 불씨가 되어 자리 잡고 있었으면 좋겠다. 


해가 갈수록 사랑도 깊어지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욕심이겠지. 

불가능할까? 무리겠지. 


나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이든 쉽게 질리는 편이다. 

그런 내가 몇 년째 공부를 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글을 쓰는 걸 남편은 신기해한다. 


나: 나 이제 진짜 공부고 뭐고 다 때려치울래!
용주부: 응. 삼천육백오십육 번째 때려치움이네. 삼천육백오십칠 번째로 다시 하겠네.
나: 아냐! 이번엔 진짜 아냐! 


우리의 대화는 늘 그렇듯 전혀 이성적이지 않고, 비논리적이며, 헛소리로 가득하다. 요즘처럼 무기력에 빠져 있을 때 나의 투정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주는 용주부가 있어 고맙다. 


희한하게도 그 어떤 위로의 말보다 힘이 난다. 안 일어날 거라고, 오늘만은 침대에 뼈를 묻겠다고 바둥대다가도 용주부의 밥을 먹고 어느새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변덕도 이 정도면 참 한결같다. 


용주부는 한결같음의 대명사이다. 옷도 마음에 드는 걸로 몇 벌을 사서 그것만 입는다. 사람들이 한 벌밖에 없냐고 무례하게 물어도 개의치 않는다. 음악도 좋아하는 것만 지겹도록 반복한다. 그만 좀 틀라고 소리를 빽 질러야 마지못해 끈다. 그래놓고 욕실에서 몰래 또 튼다. 


가장 한결같음은 뭐니 뭐니 해도 '음식'이다. 그런 용주부가 직접 요리를 하면서 조금씩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모험하는 건 아니고,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식재료를 중심으로 좀 더 다양한 요리법을 시도하는 식이다. 


용주부는 치킨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다. 치킨은 시켜 먹기만 할 줄 알았더니 급기야 밥반찬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가장 무난한 건 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닭볶음탕을 했다. 몇 년 전에 사귈 때 닭볶음탕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때와 또 맛이 달랐다. 최근에 두 번 정도 해 먹었는데 각기 다른 레시피를 해서 두 번째가 더 깊고 진한 맛이 났다. 나중에 고백하는데 치트키(?)를 썼다고 한다. 


국물이 자작해서 밥 비며 먹기 좋은 닭볶음탕

닭볶음탕의 국물이 진해서인지 메인 재료인 닭보다 감자가 더 맛있었다. 


용주부의 '닭' 요리는 급기야 치킨마요덮밥까지 진출했다. 시켜 먹는 치킨마요덮밥은 항상 치킨의 양이 부족해서 불만이었는데 용주부 표 치킨마요덮밥은 재료를 아끼지 않아서 좋다. 


밥보다 치킨이 더 많은 치킨마요덮밥

반찬 대용으로 닭요리는 닭볶음탕이 제일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일명 갈비통닭을 선보였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보던 그 갈비통닭은 아니고, 레시피의 이름이 그렇단다. 간장 베이스의 치킨이라고 보면 된다.


단짠의 기막힌 조화 갈비통닭
나: 어라? 이건 또 좀 새롭네? 데리야키 소스랑 다르게.
용주부: (무심한 척 입꼬리를 올리며) 그래?
나: (격렬히 반응하며) 응! 의외로 마늘이 복병이야! 통마늘에서 갈비맛나! 눈 감고 먹으면 모르겠는걸.

음식을 해 줄 때 먹는 사람의 반응이 시원찮으면 실컷 한 기운이 다 빠진다. 평소 리액션이 없는 편인 나는 손발짓 다 써가며 나름 열심히 표현하려고 애쓴다. 


이렇게 먹어도 또 시켜 먹는 치킨의 맛은 다르다나. 치킨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나 보다. 


갈비(맛 나는) 통닭을 뜯으며 용주부에게 물었다. 


나: 결혼하면 왜 사랑이 변할까? 안 좋은 쪽으로.
용주부: 글쎄. 사람 나름이지만 당연하게 여겨서?
나: 세상에 당연한 게 어딨어? 당연할수록 더 표현해야지.
용주부: 그렇긴 해.
나: 사는 게 힘들어서 사랑에 쏟을 에너지가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어.
용주부: 그럴 수 있지. 그런 면에서 나도 요즘 일하랴 요리하랴 에너지가 없어.
나: (못 들은 척) 

사랑해서 결혼을 하면 사랑이 더는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 되니까, 결혼해서도 사랑 타령이나 하면 팔자 좋은 소리 한다는 핀잔을 듣기 좋다. 그러나 부부 사이의 대부분의 문제들이 여전히 사랑이 중심에 있다면,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결혼 생활이 사랑만으로 되냐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불행하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남자친구에서 남편으로 변하면 사랑도 달라진다. 결혼하면 더는 사랑이 우선순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의 중심에는 언제나 사랑이 있었으면 좋겠다. 


변함없이 치킨을 사랑하지만 다양한 요리법으로 다른 맛을 내듯이 사랑도 다른 형태로 언제나 곁에 있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욕심일까? 


오늘 나는 갈비통닭을 먹으며 변함없는 용주부의 사랑을(강요하며) 확인했다. 

용주부: 참 신기한 게 예전에는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나: 지금은? 변했어?
용주부: 응!
나: 뭐야?!
용주부: (황급히) 긍정적으로 변했어.
나: 지금이 최대치야?
용주부: 아니. 나도 잘 모르지만. 

사랑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을 때까지 내 안에 사랑이 그대로 있기를 원한다. 

사랑이 변했으면 좋겠다. 

내가 나이 먹는 만큼 더 깊어지고 성숙해질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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