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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소피 Feb 16. 2024

얼마큼 좋아해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면 어디까지 먹어봤니?

좋아하는 일이 늘 좋진 않다


좋아하는 마음을 의심한 적이 있다.

좋아하는 줄 알고 시작했는데 생각과 다르거나 좋아하는 마음 만으로 버티기 힘든 일일수록 그랬다.


의심은 점점 커져서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라고 결론 지어버린다.


만약 싫어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면?

일단 제낀다.

시간을 두고 딴 걸 찾는다.

문제는 더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

진짜 최악은 제껴둔 일에 자꾸 미련이 간다.


한동안 위의 행동을 무한반복하다가 결국 내 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일이 ‘늘’ 좋지는 않다는 것을.

최은영 작가는 이런 내 마음을 어찌 알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글 쓰는 일이 쉬웠다면, 당신은 쉽게 흥미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어렵고, 괴롭고, 지치고, 부끄러워 때때로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밖에 느낄 수 없는 일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 또한 글쓰기라는 사실에 당신은 마음을 빼앗겼다. 글쓰기로 자기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다시 글을 써 그 한계를 조금이나마 넘을 수 있다는 행복, 당신은 그것을 알기 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중 75쪽.


음.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프로 작가와 유일한(?) 공통점이다.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아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더 많다. 싫어하는 건 지금 이 자리에서 열 가지도 댈 수 있지만 좋아하는 건 그 절반도 대기 어렵다.


단순히 싫어하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후보군에 들어갈 가능성은 있어도 관심이 없으면 그 상태로 계속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인생의 팔 할은 좋아하는 일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었다. 물리적인 시간을 들인 만큼 엄청나게, 획기적으로, 평생을, 다 바쳐 이룰 사명처럼, 거룩한 일을 찾지는 못했다.


그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타인의 시선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이마저도 때에 따라 마른 갈대 마냥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래도 원래대로 돌아올 거라는 걸 안다.


20~30대를 관통하던 실체 없는 불안에서 벗어나 어설프게나마 형태를 갖춘 불안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 지금,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준다.


공룡이는 좋아하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평생에 걸쳐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은 아직 찾는 중이다. 그동안 좋아하는 ‘줄’ 알고 살아왔던 시간이 긴 만큼 착각에서 벗어났을 때의 충격으로 꽤 오랜 기간 방황하고 힘들어했다.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정확히는 자신을 잘 몰라서 나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공룡 : 자기가 보기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 세 가지만  대 봐.
나 : 많지! 햄버거, 피자, 치킨, 소고기… 벌써 세 가지 넘네!
공룡 : …. 먹는 거 말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없어?
나 : 먹는 거만큼 좋아하는 일이 있어?
공룡 : 잘 모르겠어.
나 : 거기서부터 생각해 봐.

자신이 미처 알지 못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알아채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아무리 진심이고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해도 어디까지 ‘내 생각’ 일뿐이다.


사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을 간섭할 자격이 ’ 당연하게 ‘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자격을 너무나 많이 착각해서 혼자 상처받고 상처 줬다.


그래도 물어본다면, 좋아하는 건 ‘포기’가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마음은 보상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지칠 때가 있다.

좋아하는 만큼 잘하고 싶어서 지친다.

그럴 때는 작은 보상이 필요하다.


늦은 밤, 불면증으로 밤낮이 뒤 바뀌어 오늘인지 내일인지 그 언저리에 걸쳐서 하루를 살 때가 있었다.


공룡이의 근무 시간을 맞추느라 신경이 곤두서서 하루를 꼬박 새웠을 때 속상한 건 깨어있는 시간만큼 생산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럴 때는 입맛이 없다. 배는 고픈데 밥은 먹고 싶지 않다. 그러나 먹는 걸로 보상을 받고 싶다. 야심한 새벽, 간단하게 먹을 게 없을까?


식재료는 당일 먹을 만큼만 사는 게 원칙이라 뭘 먹을지 생각한 적이 없으니 사놓은 게 없다. 냉장고도 작고, 미리 사봤자 버리는 게 일이다. 그 뒤론 냉장고를 채워놓지 않는다. 용주부가 일이 바쁠 때는 냉장고가 텅텅 빈다.


배달 음식도 싫다. 밤 11시가 넘으면 배달되는 음식이 거의 없거나 한정적이다. 새벽 5시에 배달이 되는 건 용주부 음식 밖에 없다.


혼자 있으면 끼니를 대충 때우는 걸 아는 용주부가 편의점으로 달려간다. 편의점에 가도 먹을만한 건 한정적이다. 쌀을 안 먹으면 면요리 밖에 없다. 라면도 질린다.


용주부는 요리 스승인 *튜브에게 배운 라면을 ‘요리’한다. 라면을 정해진 대로 끓이는 게 아니라 퓨전으로 섞어서 새로운 걸 만들어 낸다.


들기름과 치킨으로 맛을 낸 ‘꼬꼬면’
육계장 라면의 맑은 국물과 매운 국물 버전
스팸 머시기 라면과 너부리 소바
불맛 짬뽕과 돼지고기를 볶은 간짜장 라면
김치 없어도 오모리 김치찌개라면으로 만든 김치전과 너구리 오뎅라면

누구나 아는 맛에 색다름 한 스푼이 가미된 용주부 표 라면의 탄생이다. 사진에 다 담지 못하는 이름도 다 기억 못 하는 다양한 라면을 야식으로 먹는 호사를 누렸다.


결혼하면 남이 해주는 음식은 다 맛있다는 웃픈 얘기가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짜 맛있는 건 라면 하나라도 색다르게 만들어서 같이 먹으려고 하는 마음이 담긴 음식이다.


나 : 자기가 먹는 거보다 좋아하는 게 있네!
공룡 : 뭔데?
나 : 자기가 해준 음식을 잘 먹는 모습을 나를 보는 거!
공룡 : …. 어째 좀 말려드는 기분인데.
나 : 부정할 수 없을걸?


나는 용주부가 해준 음식을 먹고 오늘 하루치 좋아하다 지친 마음을 보상받는다.

공룡이는 용주부가 돼서 음식을 먹는 기쁨과 요리하는 기쁨까지 얻는다.  

그렇게 하나씩 좋아하는 마음을 알아간다.


얼마큼 좋아해야 진짜 좋아하는 걸까


사람도, 일도, 공부도, 놀이도 아무리 좋아해도 질릴 때가 있다.

좋아할수록 적당히 거리를 둬야 한다. 너무 좋아서 찰싹 붙어 있으면 금세 질린다.


가뜩이나 변덕이 심하고 잘 질리는 성격에 뭔가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하다 얼마 안 가 시들해진다.


내 인생에서 좋아했던 것들 중 가장 빨리 질린 건 직장이었고,

가장 깊게 실망한 건 사람이었고,

가장 많은 한계를 느낀 건 글쓰기와 공부였고,

그럼에도 가장 치유받은 건 글쓰기와 공부였다.

가장 힘들 때 버티게 한 건 사랑이었다.


좋을 때는 뭔들 좋지 않을까.

힘들 때, 바닥까지 처박혔을 때 곁에 있는 것들이 진짜다.


공룡이와 나는 서로가 바닥일 때 만났다. 바닥인 사람끼리 어떻게 서로를 채울 수 있었을까? 바닥인 줄 아니까 상대에게 뭔가를 주려면 자신부터 채워야 했다.


사회가 규정해 놓은, 남들의 시선에 보기 좋은 잡다한 것들로 모래성 위에 집 짓는 거 말고 제대로 견고하게 쌓아 올리고 싶었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결국엔 진짜 좋아하는 것만 남는다. 지나고 보니 나를 기쁘게 했던 것도, 힘들게 했던 것도 애초에 좋아했던 것들(일, 사람, 사랑, 글쓰기, 공부)이다.


공룡이는 비록 요리금지령​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 요리를 하게 됐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는 기쁨만큼이나 직접 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한 걸음 다가간 셈이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자신의 요리를 먹는 표정부터 살피게 된다.

공룡이는 내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때는 오직 음식 자체만 집중했다. 다 먹고 나야 주변이 보였다.


용주부가 되고 나서는 첫 술을 떴을 때 내 표정부터 살핀다. 진짜 만족했을 때의 내 표정을 기억해 뒀다가 그 표정이 나오는지에 따라 그날 요리의 성과(?)를 평가한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부족할 때가 많다는 걸 안다. 우리 인생이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게 내버려 두지 않으니까. 그렇게 삶이 뜻대로 된다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애착이 왜 필요하겠는가.


좋아하는 건 사람이든, 일이든 뭐든 간에 지금 이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편의점에서 24시간 어느 때건 살 수 있는 라면도 용주부의 손을 거치면 특별한 요리가 된다. 그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좋아할 수 있도록 오늘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나이, 직업, 성별, 능력을 불문하고 그 누구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 좋아할 권리가 있다.
나는 그걸 행복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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